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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Oct 14. 2022

지금: 찰나에 사라질 보석 같은 순간들

[해석: 나는 이마트를 갔어. 거기서 꽃게도 봤어. 근데 거기서 봤는데 왕 꽃게래. 끝 ]


삐뚤빼뚤 맞춤법을 다 비껴 쓴 아이의 두어 문장짜리 짧은 일기가 너무나도 귀여워 남편과 아이 몰래 숨죽여 웃었다.


왜 이렇게 썼냐고 물어보거나 맞춤법을 고쳐주지 않았다. 이 보석 같은 순간은 늘 찰나에만 반짝 존재함을 알기에...


그저 아이를 끌어안고 엉덩이를 두드리며 잘했다 대견하다 칭찬세례만을 담뿍 쏟아부었다. 이 역시 곧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금세 사라지겠지. 아이도 신이 났는지 배시시 웃는다.


작은아이까지 다섯 살이 되고 나니 처음 말 배울 적 그 특유의 서툰 아기 발음을 들을 기회가 다 사라져 버렸다. 가끔 핸드폰을 돌려보면서 이런 때가 있었구나 하고 감탄한다.

이젠 그 귀여운 모습이 다 지났다는 생각에 늘 아쉽기만 했는데 오늘 큰아이 일기를 보면서 깨달았다.


아! 한 번 더 있다! 말 배우는 것처럼 글 쓸 때도 이런 순간이 존재하는구나! 이 귀여운 순간이 존재함을 깨닫고 정말 감사했다. 아 이번에도 온전히 누려야지, 찰나에 사라져 버릴 이 보석 같은 순간들!

 

두 아이 손을 잡고 시장을 걸어가다 보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나물 팔고 계신 할머니들이 우리가 채 가까워지기도  전에 감탄을 내뱉으며 말을 거신다.


하이고~ 이뻐라~ 아들 둘 키우느라 엄마가 고생한다~  예쁘다~ 예뻐!

 

예전에는 아이들이 귀엽다고 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젊은 엄마가 아기 둘 키우느라 고군분투하는 그 모습 자체가 예쁘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사촌동생 결혼식에 다녀왔는데 나와 10여 년 밖에 차이 나지 않는 동생이 새신랑 새신부이라는 이름으로 서있으니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쁘던지 나 역시  예쁘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길거리 할머니들처럼. 이제는 얼굴이 아니라 점점 그 존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참 다 예쁘다.

 

올해 나는 마흔한 살이다. 나는 늘 가장 나이 많은 나를 보지만 다른 누군가의 시선에서는 여전히 예쁘고 귀여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시선을 내가 나에게로 비추기 시작하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마흔한 살의 나도 환갑의 내가 핸드폰을 돌려 바라본다면 어머 이렇게 젊었었구나! 이렇게 예뻤었구나 하고 감탄만 나올 것이다. 감탄은 비단 일곱 살 에게만 존재하지 않는다. 보는 시선에 따라 누구도 어떤 것도 모두 감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흔이 넘은 나 역시도 말이다.

 

전보다 뱃살이 조금 더 나왔어도, 주름이 한두 개 더 생겼어도,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어도 나는 여전히 예쁘다. 충분히 그럴 수 있고 그럼에도 예쁘다. 나 역시 지금 이 찰나에만 존재 하기에...!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해서 나를 비극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가끔은 너그러운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자. 그러면 바로 알아챌 것이다. 지금 내가 얼마나 예쁜가를.

 

며칠째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아이들을 등원 버스에 태우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상쾌하다.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안 먼 산에 비가 흩뿌려지는 하늘을 보며 시원한 공기를 한 모금 들이마신다.


참 예쁘다.

비 오는 하늘도 그리고 오늘의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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