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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Oct 14. 2022

강릉엔 어벤저스가 산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 순간 세상이 나를 사랑해주고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그래서 나는 사실 큰 걱정이 없다. 오늘도 나의 세상은 나를 힘껏 지켜주었다. 그것도 아주 확실하게!

 

몇 해 전 아일랜드에 이민을 간 친한 언니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오늘 급작스레 잠깐 나를 만나러 강릉엘 내려온다고 했다. 하필 내가 보강 수업이 있는 날 이어서 잠깐 점심식사만 같이하기로 했다.


용인에서 아침부터 차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몇 시간을 달려와서는 딱 두 시간 점심만 먹고 조금 전에 사라졌다. 사실 이것 자체가 나에겐 기적이다.


그 멀리서 나를 보러 이렇게 한걸음에 와주다니. 아!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이것만을 봐도 세상은 나를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터미널에 도착한 언니를 태우고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길이었다. 식당은 터미널에서 약 15분 정도 떨어진 동네에 있었다.


강릉은 처음 보는 식당이 매달 생긴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항상 북적이고 새롭다. 특히나 바다 쪽은 더하다. 오늘 가는 식당 역시 바다 근처 새로 생긴 곳이었다. 그 말인 즉 나에게는 초행길이라는 이야기다.


식당은 길 건너 왼쪽에 있었고 우선 유턴이나 좌회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비교적 넓어 보이는 곳에서 좌회전을 하고 차를 조금 더 돌리려는 찰나 앞바퀴가 하수도 배수구 옆에 푹 빠져버렸다. 후진을 아무리 해도 바퀴는 헛돌았다.

 

"헉! 2시에는 내가 수업이라 밥 먹고 이야기 나누려면 시간도 별로 없는데... 아.. 어쩌지?.. 그래! 레카를 불러야겠구나!"


(예전에도 한  빠져본 적이 있어서 바로 레카를 블러야 한다는 생각을 해낸 내가 나는 그 와중에도 0.1초 대견스러웠다.  ㅎㅎ)  


그런데 레카 번호를 누르기도 전에 저 옆에 식당 아저씨께서 보시더니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그리고 곧바로 동료분들을 손짓으로 부르셨다.  본인이 차 앞을 들어줄 테니 후진하면서 뒤로 빼라고 하셨다.  


"어머나, 어떻게요~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연거푸 외치다가 나는 차에서 내렸다. 분이 운전대를 잡고 나머지 두 분은 차 앞을 들었다. 나도 같이 밀었다.


그렇게 세분은 힘을 합쳐  차를 들어 올려주셨고 순식간에 차는 하수구에서 빠져나와있었다. 그리곤 별일 아니라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하고는 손을 툭툭 털어내셨다.

 

와..!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나는 감사하면서도 어리둥절 어안이 벙벙했다.


차를 빼고 보니 차와 부딪힌 바닥 배수구 한쪽이 움푹 찌그러져 있었다.


"어머나! 아저씨, 이거는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그건 빨리 도망가야지~!"


배수구는 강릉시 꺼라고 뭐 할거 없으니 그냥 빨리 도망가라 하셨다.


"아저씨, 저 식당이에요? 제가 다음에 밥 먹으러 올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큰소리로 서둘러 감사 인사만 전하고는 예약해놓은 식당으로 출발했고 전혀 늦지 않았다.

 

언니 말로는 우리 차가 빠지니 어디선가 갑자기 아저씨 세 분이 어벤저스처럼  짜잔! 하고 나타나서 후다닥  해결해주시고는 유유히 사라졌다고 했다.


강릉 인심이냐고 했지만 나도 얼떨떨할 정도로 감사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여쭤보니 부산분이셨다. ^^ )


그런데 나에게는 이런 일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운전하다가 일방통행길을 거꾸로 잘못 들면 지나가던 분들께서 길을 통제하고 내 차가 돌려 나가게 해 주시고, 갑자기 잠긴 현관문도 관리사무소 아저씨가 짠하고 열어주시고.. 와... 소하게 끝도 없다 이런 이야기...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큰 걱정이 안 된다. 어차피 다 잘 해결될걸 알기에. 그리고 그만해서 다행이기에...

 

나는 매일이 눈물 날 정도로 감사하다. 나의 세상에게서 이런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어서. 그래서 나도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랑을 담뿍담뿍 나누어 주려 한다.


내가 매일 만나는 공부방 아이들에게도, 내 두 아이에게도. 길에 핀 나무와 들꽃에게도... 나를 스치는 모든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말이다.



한 달 쯤뒤, 남편과 그 식당엘 다시 찾아갔다. 경황이 없어 무슨 식당 인지도 몰랐다. 우리는 메뉴도 모르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복숭아 한 상자 사들고...


"아저씨! 저 기억하세요? 저 차요~ 마티즈~^^ "

"어~?! 네~ 네~ 아이고~" 


아저씨들은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다.

그리곤 세분이서 조용히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상하다~ 분명 아가씨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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