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스구 Jul 31. 2024

아티스트 데이트

나만의 놀이터 만들기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 보면

중년 이후의 창조적인  삶을 위한 소소한 팁들이 나온다.


과거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인생을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자는 취지에서

회고록 쓰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모닝페이지,

내면의 어린아이를 만나기 위한

창조적 놀이로서

아티스트 데이트,

불안을 잠재우고

산뜻한 정신으로 나를 만나기 위한 루틴으로서의

산책하기 등이 나온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가끔씩 나만을 위한 놀이로서

여기저기 혼자 쏘다니곤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저자가 말하는 아티스트 데이트였다.

그저 가고 싶은 곳 혼자 갔다 오고,

하고 싶은 거 혼자 하기 놀이다.

매번 다른 곳으로 가도 되고

늘 자주 가는 곳이어도 상관없다.


마음이 울적한 날,

그저 심심한 날,

남편이랑 싸웠는데 갈 곳이 마땅히 없을 때,

하루 종일 잠만 자는 고3 딸내미 때문에 한숨만 나올 때,

스케줄 사이에 시간이 뜰 때,

책을 읽고 싶은데 왠지 도서관은 가기 싫을 때,

나는 주로 교보문고로 데이트를 간다.


교보문고에서 나는 냄새가 좋아서

'교보문고 향수'까지 샀다.  

유방암 환자인 나는

더 이상 향수를 몸에 뿌릴 일이 없어서

당근에 다 처분했는데

유일하게 남겨 놓은 향수 하나가 

 'The scent of page'다.

가끔 교보문고 냄새가 그리울 때

허공에 뿌리는 용도로 사용한다.


방사선 치료 17회 차가 끝난 오늘

집으로 바로 가기는 싫고

건대 호수를 한 바퀴 돌고 갈까 하다가

습하고 더운 날씨에 금방 마음이 돌아서서

교보문고로 향했다.  

 

오늘의 아티스트 데이트 상대는

신미경 작가의 <뿌리가 튼튼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에세이다.

일상의 루틴이 나와 비슷한 면이 많아서

공감이 가고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게 써 내려간 필체도 맘에 든다.  


특히, 세탁소에 드라이클리닝을 맡겼는데

덜렁거리듯 달려 있던 코트의 단추를

꼼꼼히 꿰매어 놓은 세탁소 아저씨의

보이지 않는 배려 (보이는 건가?)에 감동받아

이사한 후에도 그 세탁소만 이용한다는 내용에

어쩜 이런 부분이 나랑 똑같냐,

사람은 다 똑같은 포인트에

감동받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 근처에도 개인이 하는 신OO 세탁소가

있는데 크린OOO보다 몇 배로 비싸지만

얼룩제거, 주름제거의 완벽도는

감탄을 자아낼 정도이고

부탁하지 않은 부분까지 꼼꼼히 보시고

처리를 해 놓으신다.  

현금만 받는 곳이고 가격도 비싸서

크린OOO로 다시 돌아갔었으나

역시나 허접한 완성도는

가격이 아무리 싸도 내 성미에 차지 않았다.

아무리 다른 세탁소를 이용해 봐도

거기 만한 곳이 없어서

이젠 완전히 신OO세탁소에 정착했다.


신미경 작가가 써 놓은 구절 중에

"엄머엄머! 내 얘기네! 나네 나!" 하고

격하게 공감했던 부분들이 있다.


'자신감이란 믿는 구석에서 나오는 것'

'고등어처럼 성격이 급해서 추진력은 좋지만

남들도 나 같을 거라고 착각한다는 것,

상대방이 묵묵부답일 때 숨넘어갈 거 같다는 것'

'혼자 먹을 때도 제대로 잘 차려먹으려고

애쓰는 점'

'유흥보다 산책을 더 좋아하는 점'

'잠자리에 들기 전 아로마 오일로 마사지하는 것'

'숙면을 위한 캐모마일 티를 즐기는 것'

'암막커튼보다 얇은 커튼 틈새로

햇빛을 느끼며 조금씩 잠에서 깨는 것을

좋아하는 점'

'원데이클래스 좋아하고

배움에서 즐거움을 찾는 점'


1시간 반 만에 책 한 권을 다 읽고

난닝구 매장에 가서 이것저것 입어 보고

유니클로 매장에 가서 또 이것저것 입어 보고

검은색 브래지어와 티셔츠 몇 개를 새로 샀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파란색 잉크로 몸에 선과 원을 그려놨는데

브래지어와 티셔츠에 파란 잉크물이 들어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검은색 브래지어에

검은색 티셔츠만 입었어야 하는 건데...

하면서 새로운 브래지어와 티셔츠를 살 명분이 생겨서 기뻤다.

 

마지막으로

롯데백화점 지하에 있는 식료품점에 들러서

트러플 소스를 사고

빵집에 들러서 유기농 통밀빵을 샀다.

나를 위한 소소한 사치에 기분이 좋아졌다.


어서 집으로 빨리 돌아가

남편이 만들어 놓은

저당 레모네이드를 마시고 싶어졌다.


다음번 아티스트 데이트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장소를 택해야겠다.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이전 14화 유방암 방사선 치료 11회 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