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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2시간전

유방암 방사선 치료 11회 차

9회 남았다 앗싸!

2024년 7월 24일,

오늘로 방사선 치료 11회 차를 완료했다.

"벌써 반이나 지났어요!" 하시며 하이 텐션으로

말씀하시는 방사선 종양학과 교수님 덕분에

기분이 산뜻해지는 면담이었다.


불편한 증상은 없냐고 물어보셔서

딱히 불편한 곳은 없지만

얼굴에 뭐가 자꾸 난다고 했더니

아마 그건 항호르몬제 때문일 거라고 하셨다.

방사선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단다.


어제 침대협탁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한의원 가서 침 맞고 부항 뜨고 왔는데

상관없냐고 여쭈었더니

아무 상관없으니 치료 잘 받으라고 하셨다.

"아이고~ 어쩌다가 허리를..." 하시며

안타까워하시길래

요즘 왠지 기력이 전체적으로 없어진 거 같고

조금만 힘쓰는 일을 해도 근육통이 온다고 했더니

그것 역시 항호르몬제와 주사제 때문에 각종 갱년기 증상이

나타나는 거라고 하셨다.


불면증에 근육통, 관절통증, 허리통증 등

각종 통증과 몸의 뻣뻣함이 올 수 있다고.

하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한 달째 브레트라정 (항호르몬제)을

매일 복용하고 있고

한 달에 한번 졸라덱스 (난소호르몬 억제 주사)를 복부에 맞고 있다.

유방외과 교수님이 갱년기 증상이 올 거라고 하셨는데

드디어...

드디어 시작됐다 갱년기.


왕년에 스쿼트 100개를

거뜬히 해내고 (심으뜸 저리 가라!)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풀업까지

가뿐히 해내는 중년 여성이 거의 없다며

트레이너의 폭풍 칭찬을 받아가며

근육량 자랑하던 내가

고작 침대 협탁 하나 들어 올리다가

허리를 삐끗하다니

그 순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작년 겨울에 골프를 배운 이후로

손목과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계속 침을 맞았는데

낫는 둥 마는 둥 호전 속도가 느려터져서

언제까지 침을 맞아야 하는 걸까

언제부터 골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걸까

했더니 이젠 항호르몬제 때문에

관절이 뻣뻣해지고 있으니

골프 후유증에 항호르몬제 부작용까지 겹쳐

엎친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파라핀 베스가 손가락 통증에

좋다는 말을 시어머니께 듣자마자

인터넷으로 바로 주문하여

매일 두 차례 씩 찜질을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방사선 치료 직후에 속이 느글느글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거나

머리가 빙빙 돌아서

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집에 간다거나

치료 부위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따가워서 옷을 제대로 입을 수가 없을 지경이라는데

나는 아직까진 멀쩡하다.


다만, 방사선 기계를 쬐고 있을 때

공기 같은 느낌의 뭔가가 내 몸

주위를 맴도는 듯하다.

위이잉 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있으라 하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엄청 궁금한데

눈을 뜰 수가 없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

'나는 건강해지고 있다'

주문을 십여 차례 외고 있으면

발가락이 간질간질

손잡이를 잡고 있는

팔이 흐들흐들거린다.


혈관 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처럼

근질근질 낯선 느낌이 들다가

혈관의 일부분이

툭!

튀어 나갈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 때쯤

치료는 끝난다.


행여나 발진 생길까 봐

병원에서 처방해 준 피부연고를

매일 두 차례 씩 꼬박꼬박 바르고 있고

항암치료를 받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머리카락이 빠질까 봐

서리태 콩물을 직접 만들어 마시고

매일 커피샴푸로 머리를 감고 있다.

그럼에도 머리카락이 바닥에

한 움큼 떨어져 있는 현장을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방사선 치료와는 상관없이

항호르몬제로 인한 부작용이

어쩌면 더 심한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우울감과 분노,

불면증도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격적인 암이 아님에 감사하고

전이가 되지 않았음에 감사하고

이 와중에 일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감사 또 감사하다.


비록 암으로 인해

삶의 질은 다소 떨어졌고

좋아하는 기호 음식도 끊고

즐기던 와인도 못 마시게 되었지만

삶을 원망하지 않고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으니 나쁜 경험만은 아닌 거 같다.


무심하던 남편도 점점 더 내 건강을

염려해주고 있고

생일도 제대로 안 챙겨주던 사람이

고급 오마카세 레스토랑에

데려가질 않나

주당이 술 마시는 횟수를 줄여가며

내가 스트레스 덜 받도록

신경을 써주니

그야말로

'우리 남편이 달라졌어요'다!


남은 9회 방사선 치료 잘 마무리 짓고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부지런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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