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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Jul 11. 2024

유방암 방사선 치료를 시작하다

7월 8일에 방사선 치료를 위한 모의 CT를 하러

건대병원 방사선 종양학과에 내원했다.  

담당 교수님을 뵈었을 때,

아주 상기된 표정으로

"OOO님, 아주 좋은 소식이 있어요!

최근에 따끈따끈한 논문 결과가 나왔는데

재건 수술을 받은 유방암 환자는

방사선 치료를 20회를 하든 30회를 하든

별 차이가 없다고 나왔어요.

그래서 OOO님은 20회만 하실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오~ 얼마나 좋은 소식인가!

무려 10회가 줄어들었다.

그만큼 방사선 노출량도 적어지고

부작용도 줄어들 것이며

땀나는 여름날 병원 오가는 수고가 덜어질 것이며

병원비도 줄어들 것이고

가슴에 그려놓은 방사선 치료 가이드 선이 지워질까 봐

샤워도 맘 놓고 못하는데 그만큼 번거로움도 줄어들 것이다.


교수님은 신기하게도 텐션이 아주 높으신 분이었다.

옆집 언니처럼 푸근하고 친근한 인상에

친절하고도 다정한 목소리로 위로와 격려를 해주셨다.

하마터면 또 울 뻔.


방사선 치료 무서운 거 아니니까

걱정할 거 전혀 없다고 하셨고

최근에는 부작용도 많이 줄었으며

아주 세밀한 설계로 폐, 위, 간 같은 장기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하실 거라고 하셨다.


내 인생 첫 방사선 치료라 유튜브와 구글에 부작용에 대해 이것저것 찾아보았는데

피부가 괴사 된 사진들을 보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혹시나 내 피부가 그렇게 될까 봐.


2018년에 시행된 맘마프린트 유전자 검사에서 Low Risk 환자로 분류됐으며

이러한 Low Risk 환자의 5년 내 유방암 재발 확률이 1. 3%로 나왔었는데 재발한 나니까.


한 가지 안 좋은 소식은,

병원의 수익이 떨어지는 것이라며 까르르 웃으시던

교수님의 유머러스한 모습에 많이 안심이 되었다.


나는 건대 졸업자다.

그래서 건대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무려 23년째 살고 있다.

모교의 병원에 수익이 줄어드는 건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동안 건대병원에서 온 가족이 입원과 수술, 진료를 많이 받았으니

거의 VIP 수준이라 이 정도 미안함은 떨쳐 버리련다.


7월 10일, 어제 첫 방사선 치료가 시작되었다.

방사선 종양학과 인포데스크에 접수하고

가운으로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다가

내 이름이 호명되자 1번 룸으로 들어갔다.


남자 방사선사 두 분과 레지던트로 보이는 여의사 한 분이 계셨다.

방사선사가 안내하는 대로 MRI처럼 생긴 기계에 앉았다가 가운을 벗어 어깨에 걸쳤으며

다리를 펴고 똑바로 누웠다.

손을 머리 위로 올려 손잡이를 잡으라고 해서

잡고 있었더니

두 명의 방사선사가 좌우로 서서 양쪽 가슴에 파란색 펜으로 선을 또 그린다.

지난번 모의 CT때 가슴 중앙과 가슴 양 옆으로 십자가 3개를 그려 놓더니

이번엔 뭔가 좀 더 선이 많고 복잡하다.  


피부암 걸린 지인이 다른 병원에서 모의 CT를 할 당시,  

수술 부위가 배꼽 주변부라 중요 부위만 천으로 간신히 덮어 놓고

무려 다섯 명의 남자 방사선사가 달려들어 여기저기 그림을 그려서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단다.

 

다행히(?) 나는 남자 두 명이 중요 부위가 아닌 가슴에 그림을 그려줘서 덜 민망했으나

혹시나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린 채

모든 과정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리 의료 행위라 해도,

애를 두 명이나 낳은 아줌마라 해도,

이런 순간순간의 민망함은 나이가 오십을 향해 가고 있어도 무뎌지지가 않는다.

이래서 아프면 안 된다고 또 한 번 다짐하게 된다.


몇 분 간의 선 그리기 과정이 끝나고,

몸의 위치를 이리저리 재정비해주시더니

이제부터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멘트가 나온다.

1~2분 정도 됐으려나...

가만히 안 움직이고 숨만 쉬고 있었더니

다 끝났다며

다가와 몸을 일으켜 주신다.

벗어놨던 가운을 다시 걸치고 인사를 하고

유유히 1번 룸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간편하고 빠르고 아무 통증도 느낌도 없었다.

의사도 간호사도 방사선사도 모두가 친절했고 고요하게 일사불란했다.


간호사가 준 'X-DERM'이라는 연고를

집에 와서 선이 지워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랐다.

혹시 있을지 모를 방사선 치료 후유증을 예방하기 위해 바르는 연고인데

후유증이 심한 사람은 피부가 다 벗겨지고

빨갛게 부어오르고 따갑다고 한다.

아직은 1 회차라 전혀 아무 느낌 없다.


저녁에 단월드에서 명상, 체조 후

남편과 한강 가서 한 시간 정도 걷고 왔더니 땀이 촉촉이 배어 나왔다.

선이 지워지지 않도록 '매트릭스'를 찍으며 샤워를 했다.


음... 왜 매트릭스냐 하면,

유방암 환자가 아니면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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