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스구 Jul 03. 2024

유방암과 수영, 골프

운동은 다 좋은 줄

직장인이었던 20대 중반,

살을 빼려고 저녁 수영을 등록했었고

3개월 동안 5kg이 빠졌다.

원하는 체중 감량을 달성했기에

수영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 중이었는데

평영 발차기를 배우는 첫 수업 때

충격적인 장면을 본 뒤 

뒤도 안 돌아보고 그만두었다.


지금도 평영발차기를 그렇게 가르치는

수영강사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당시엔 수영장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리고 엉덩이와 다리는 수영장 레인 쪽으로 향하게 한 뒤

개구리 헤엄치듯 다리를 접었다가 벌렸다가 하는 동작을 반복하게 했다.

몇 명씩 번갈아가며 했기에 나머지 회원들은 물속에서 구경하고

시범을 보이는 몇 명은 물밖에서 민망한 자세를 선보여야 했다.

직장인 저녁 수영반이라 대부분 20~30대였고 남녀의 비율이 거의 반반이었다.

남자 회원들의 시선이 어디에 쏠려있을지 뻔했다.

내 차례가 되기 전 다른 사람들의 시범을 본 뒤

바로 결정을 내렸다.  


이제 수영 그만둬야겠다.

평영은 안 배워도 그만이야.


그 뒤로는 20년간 어설픈 자유형과 배영만으로 어찌어찌 물놀이를 즐기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호캉스를 갈 때마다 물밖으로 목을 내놓고 평영을 하는 '헤드업 평영' 구사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선글라스를 쓰고 메이컵을 한 채,

얼굴에 물 묻힐 필요 없이,

판다처럼 수경자국 안 나게

우아하게 영법을 구사할 수 있는 그녀들이 너무 부러워서 미치겠는 거다.


특히, 동남아의 에메랄드빛 호텔 수영장이나 바다에서 비키니 입고 유유자적하게

헤드업 평영하는 여인들 속에서

수경과 수모를 착용하고

실내강습용 수영복이나 래시가드를 입고

팔 꺾기조차 안 되는 일직선팔 자유형을 구사하며

호흡을 하는 건지 살려달라고 하는 건지

몸이 뒤집어질 듯 고개를 쳐들고 수영하는

내 모습이 무척 창피하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호텔수영장에서 풀메이컵을 하고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사진만 100장 찍다 가는 SNS용 호캉스는 내 체질에 안 맞았다.


그래서 드디어 작년에

20년 만에 수영장 등록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목표는 오로지 헤드업 평영이었다.

또 그 민망한 개구리 영법 시범을 보이라고 할까 봐 단체 강습 말고 1대 3 강습을 신청했다.

강사분께 딴 건 다 필요 없고 헤드업 평영부터 가르쳐달라고 부탁드렸다.

말이 1대 3이지 수강생이 2명이거나

나 혼자 1대 1로 강습받는 날도 종종 있었다.


헤드업 평영을 만만하게 봤던 나는 1~2개월 정도만 바짝 연습하면 저절로 잘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강사가 호흡법부터 기본기를 제대로 다시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그렇게 호흡법부터 다시 시작해서 

자유형, 배영, 평영, 헤드업 평영, 접영 기초까지 1년을 배웠다.


헤드업 평영을 배울 땐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서 가라앉았다.

평영은 되는데 헤드업 평영이 안 돼서 3개월이 그냥 흘러가버렸고

급기야는 세부 여행 가기 2주일 전부터

매일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연습을 했는데도 되질 않더니 호핑투어 때 들어간 에메랄드빛 바다에서 몸이 두둥실 떠오르며 헤드업 평영이 저절로 되는 거였다.


럴수 럴수 이럴 수!!!!


수많은 수영 강사 유튜버들의 동영상을 보고

이론을 익히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 돌려가며

수영장에서 연습을 해도 해도 안되더니

세부 바다에서 저절로 되는 것이 신기했다.

염분도 있고 바닷물 깊이가 깊어서 부력이 잘 생긴듯하다.


그때 몸에 힘을 어느 정도로 빼야 하는지,

손과 발의 움직임과 타이밍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갑자기 한 번에 터득했다.

수영 강습 영상과 이론으로

팔과 다리를 하나씩 하나씩 분리해서

드릴 연습을 하면

영법을 마스터할 수 있겠다고 믿었던

나의 신념과 믿음이 한 번에 깨지는 경험이기도 했다.

그 이후, 수영에 더욱더 재미를 붙여 접영까지 제대로 마스터하고야 겠다고 결심했고

내가 원하는 속도와 우아한 몸동작으로 접영 하는 영상을 강사에게 보내며

딱 이렇게 접영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동안 강사에게는 유방암 수술 환자라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수술한 지 5년이 지났고 딱히 얘기할 필요 없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수영은 재활목적으로도 많이들 하는 운동이니까.


그런데 최근에 암전문 의사가 하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알게 되었다.

자유형, 접영이 어깨관절에 무리가 많이 가는 영법이라 유방암 환자에게 좋지 않다고.

제대로 된 호흡과 자세로 천천히 하지 않는 한 수술한 쪽 팔과 어깨, 림프절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 영상을 수영한 지 1년이 지난 후에 보게 되어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소수인원 수업이라 강사가 꼼꼼하게 자세를 피드백 주셨고

뺑뺑이를 돌거나 스피드를 내는 단체 수업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런데 골프는 오히려 유방암 환자가 해도 되는 운동이라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엔 골프가 더 힘들었다.

주 3회씩 4개월 정도 레슨을 받았는데

안 아픈 데가 없이 온몸이 다 아팠다.

연습용 골프채 (아이언)는 너무 무거웠고 그걸 계속 휘두르다 보니

팔꿈치, 어깨, 손목, 손가락, 허리, 발목 등 

계속 돌아가며 아파서

한의원 가서 침을 한 달간 맞았는데

효과는 그때뿐이었다.


폼도 안 나고 정타가 잘 안 맞으니

스트레스마저 가중되었다.

탈골스윙 유튜브 영상을 백날 봐도 소용없었다.

우울감에 좋다고

주변에서 하도 권유해서 하게 되었는데

더 우울해지기만 해서 그만두었다.


지인 중에 갑상선암에 피부암까지 걸려 수술한 사람이 있는데

그 언니는 골프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단다.

피부암 수술 후 상처가 다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주치의에겐 비밀로 하고 골프를 치러 다닌다고 한다.

골프 치는 시간만큼은

암환자라는 현실도 잊게 되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아픈 줄도 모르겠고

활력이 솟는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그는 축구나 농구처럼 단체로 하는 팀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으며

탁구나 테니스 같은 1대 1 대항 경기도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겨도 져도 기분이 좋지 않아서란다.

그저 달리기처럼 혼자서 묵묵히, 별다른 기교 없이 하는 운동이 좋단다.


완전 동감이다.


수영은 달리기보다는 폼이 좀 나긴 나야

보는 사람도 눈이 시원하고

하는 사람도 자신감이 생기는 운동이긴 한데,

골프는 내가 보기에 무척이나 폼을 의식하는 운동인 거 같다.  

스크린 골프든 필드 골프든 이기거나 지는 사람이 존재하고

골프채, 골프복, 골프 치는 폼도 좋아야 쓴소리 안 듣는 운동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골프는 좀 내 체질에 안 맞는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프는 또 도전하게 될 거 같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나이 들면 같이 할 만한 운동이 골프밖에 없단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게임 한판하고

끝나고 밥 먹고 차 마시고 바람 쐬고

예쁜 신상 골프복 사 입는

그 재미로 사는 거란다.


수영도 다시 등록하게 될 거 같다.

아직 접영이 남았으니까.

 

다음 주부터 30차례의 방사선 치료가 끝나고 나면  

수영, 골프, 웨이트 다 다시 시작할 생각이다.


무리하지 않게

욕심부리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즐기면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묘비명에

이렇게 써넣고 싶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난 묘비명을 이렇게 쓰면

어떨까 한다.


유니스 구

작가(그리고 수영인, 아마추어 골퍼, 헬창)

1978~20**

적어도 끝까지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전 10화 유방암 환자에게 체력이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