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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스구 Jun 28. 2024

유방암 환자에게 체력이란

생사의 의지가 달린 일

지난달에 유방암 수술을 한 후 아직까지 기력이 없다(이번주 브런치 발행도 늦어졌네요 ㅠㅠ

양해 부탁드립니다)


기력이 달리다 보니 만사가 귀찮다.

청소, 빨래, 요리 모두 모두 귀찮다.  


운동도 하기 싫고

뭘 해먹기도 귀찮고,

림프마사지도 귀찮고

사람 만나기도 귀찮다.


그나마 없는 기력이라도 쥐어짤 수 있는 시간엔 마녀수프를 한 솥 끓이거나,

CCA 주스나 ABC주스를 만들어 놓는다.

기력이 조금 더 나는 날에는 서리태로 두유를 만들어 놓는다.


원래 나라는 사람은 '시간은 돈이야' 하면서

시간을 허투루 쓰는 걸 아까워하고

기력이 펄펄 나서 잠시도 앉아 있질 못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뭐 하나 해놓고 쉬고,

또 뭐 하나 해놓고 쉬어야 하는 신세다.

게다가 날은 점점 무더워지니 이게 수술 때문인지 날씨 때문인지 헷갈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에 보면

하루에 10km씩 매일 꾸준히 달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걷기만 하지 말고 좀 달려볼까 하는 타이밍에 읽은 책이라 갑자기 없던 투지가 솟아올랐다.


그런데....

처음 달려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10km는커녕 100미터도 달리기 힘들다는 사실을.

중력의 작용을 제대로 느끼는 운동이 달리기라는 사실.

내 다리가 내 다리가 아닌 느낌.

내 몸뚱이가 이렇게 무거웠나 싶은 느낌.

땅밑으로 한없이 꺼지는 듯한 느낌.

숨쉬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숨차 죽을 거 같은 그 느낌.


1분도 힘든데 10km를 어떻게 매일 달리지? 그것도 20년 이상?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일단 달리기는 다시 생각해 보는 걸로.


심으뜸이 쓴 <으뜸체력>을 보면

교통사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와장창 다 깨진 몸을 다시 조각조각 이어 붙이듯 운동으로 재활한

이야기가 나온다.


읽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감히 상상조차

되질 않았다.


어제 건대병원에서 졸라덱스라는 호르몬억제 주사를 배에 맞았는데 주사 한방 맞는 것도 악소리 나게 아픈데 그녀는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재활운동하고 그 와중에 일을 하며 돈까지 벌어야 했단다.


가끔, 난 왜 유방암에 걸렸을까

뭐가 문제였을까에 골몰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땅밑으로 꺼져 들어가고

입맛도 없고

기운도 없고

의욕도 없고

급기야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잉여인간이야'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된다.


안 되겠다 싶어서 주치의를 통해 정신과상담을

신청했는데 진료가 너무 밀려있어서 8월 말경에나 상담이 가능하단다.


그때까지 기다리다간 정신줄 놓을 것만 같아서 심으뜸 책을 읽고 동기부여가 된 김에

웨이트 PT라도 받아야겠다 싶어서 동네 헬스장과 PT샵을 여러 군데 알아보았으나

유방암 환자를 어떻게 운동시켜야 할지,

식단을 어떻게 관리해줘야 할지

제대로 아는 트레이너는 없었다.


졸라덱스를 맞은 날엔 복압이 올라가는 운동을 하면 안 되고

7월부터 30차례에 걸친 방사선치료가 시작될 건데 의사가 땀 많이 나는 운동하면

그림 그린 거 지워진다고 안된다고 했고

샤워도 조심해서 해야 하고

수술한 팔 쪽으로 무리가 가는 웨이트 자세나 수영도 좋지 않단다.


하... 할 수 있는 게 숨쉬기와 산책밖엔 없을 듯.

그럼 유방암 환자는 체력 관리를 어떻게 하란

말이냐.


죽느냐 사느냐

생사의 의지가 체력으로부터 나오는데

격렬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

지금의 상황에서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우선, 수면의 질 높이기다.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7시간이 가장 이상적인 수면시간이라고 한다.

너무 많이 자거나 적게 자도 면역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밤 11시에 자서 아침 6시 반에 일어나는 걸 목표로 잡았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스타일이라 7시 이전에 일어나는 걸 힘들어하는데 자는 시간을 앞당기고 자기 전 스트레칭과 복식호흡을 통해 숙면을 유도한다.


두 번째, 오전 중에 햇볕을 쬐며 30분 이내로 가벼운 걷기를 한다. 햇볕야 멜라토닌이 생성되어 밤에 숙면을 이룰 수 있고 우울감도 줄어든다.

도서관까지 매일 걸어서 왕복하면 이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거 같다.


세 번째, 하루 세끼를 건강한 집밥과 채식으로

일정한 시간에 먹기다. 일을 쉬고 있으니 혼자 밥 먹는 일이 많고 밥 먹는 시간도 들쭉날쭉하다.


예전에 받았던 LAM Test결과를 참고로 하여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식재료 위주로 식단을 짜서 먹어야겠다. 그동안 식단을 짜지 않았더니 뭘 해 먹어야 할지가 늘 고민이었고 마녀수프를 끓여서 주야장천 그것만 먹는 식이었다. 시어머니 찬스도 쓰고 암환자를 위한 맞춤 배달식도 이용해 봐야겠다.


네 번째, 친구 만나기다.

그동안 암밍아웃을 하지 않은 친구와 지인들이 많다. 이제 슬슬 밝히고 만나러 나가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은영 박사가 말하길,

큰일이 다 지나간 다음에

'나 이런 일이 있었어' 하고 털어놓으면

친구들 입장에선 당시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게 섭섭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당당히 밝히고 맛있는 건강식 사달라고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휴식다운 휴식하기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의욕도 넘치던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하기가

사실 제일 힘들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사람처럼

마음만 분주하고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든다.


그동안 의욕적으로 해오던 일과 공부와 운동을 다 쉬고 집에만 있자니 생산적이지 않은 존재가 된 거 같아 조바심이 난다.


즐겨보는 유튜버 의사 선생님이 오늘도

한 말씀하신다.

무기력을 떨치려 애쓰지 말라고.

그냥 좀 쉬라고.


네.


나 같은 암환자가 많은가 보다.


몸과 마음의 체력이 올라올 때까지

한강 가서 산책이나 하며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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