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니 May 18. 2023

#03

고급 햄 선물세트

 시작도 전이지만, 잠깐, 다른 이야기.


처음, 내 글을 인정받은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친구들은 다들 이미 방학을 맞았고, 몇 명만이 교실에 남아 이것만 다 쓰면 진짜 방학인데! 하는 조급함을 왼손에, 연필은 오른손에 쥐고 원고지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은 무서운 걸로 유명한 국어 선생님이셨고, 어쩌다 써낸 숙제가 선생님의 눈에 들어왔는지 그럴듯하게 첨삭해 주신 대로 다시 고쳐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그 교실의 풍경은 어렴풋이 생각이 나고, 그리고 그다음 장면은 여름방학이 끝난 이후 전교 방송 조회시간에 나가서 상을 받는 것이었다. 왜 썼는지, 어디에 낼 원고 인지도 몰랐지만 그때 상과 함께 받은 부상이 M사의 고급 햄 선물세트였던 것으로 보아 그 회사의 이벤트성 어린이 글짓기 대회쯤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을 시작으로, 담임 선생님은 글짓기 대회가 있으면 종종 나를 데리고 가셨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학교나 학원(그 시절 그 지역에  살았던 학생이라면 대부분 다녔거나 적어도 이름은 아는 대형학원이었다), 교육청의 글짓기 대회, 독후감 대회 등에서 줄줄이 상을 받았는데, 지금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글을 잘 썼다기보다는 어른의 시각에서, 어린이가 이런 글을 쓰다니,라고 생각할 법한 그럴듯한 글을 쓰는 요령이 있었던 것 같다.


 좀 더 이전으로 돌아가서,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장난감류는 전혀 사주지 않으셨고, 대신 책은 갖고 싶은 대로 다 사주셨다. 넘쳐나는 시간에 할 거라고는 책 읽기밖에 없었기 때문에 정말로 취미가 독서가 되어버렸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펄벅의 대지를 읽는, 연간 독서량이 백 권은 거뜬히 넘는 아이로 성장했다. 덕분에 지금도 영상보다는 활자를 좋아하고, 화장실에서조차 글자를 읽지 않으면 뭔가 불편한, 그래서 상품 라벨이라도 읽고 앉은 어른이 되었는데, 중요한 건 이것이다. 진작부터 다른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읽어 보았기 때문에, 세상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이는 게 뭔지 알고, 그래서 그럴듯하게 포장할 줄 알았다는 것.


햄이 진짜 맛있긴 했는데. 이런 게 바로 좋은 동기부여

매거진의 이전글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