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아니라고

아름다웠던 사람아 그리운 나의 계절아

by 하영


나는 장기연애를 했다.

6년,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20대의 대부분이 그와의 시간이었다 말하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그와 나는 스물 하나에 만났다.

참 행복한 연애를 했다고 기억하고 있고, 아직도 내겐 좋은 추억이자 아름다운 시절, 그리운 계절이다.


어린 연인들이 그렇듯, 우리는 영원을 약속하며 미래를 함께 그렸다. 현실적인 부분은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세세한 미래의 자녀 이름 같은 것도 지어보곤 했지.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싶었지만 어리고 돈도 없어 주로 신촌에서만 놀았다. 해외여행 가는 기분을 내려고 빈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 가서 사진만 찍고 돌아오기도 했는데 그게 어찌나 재미있던지.

6년 내내 싸운 적도 한번 없다.


그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나는 20대 중반까지 우울증이 아주 심해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는 일도 하곤 했는데, 그는 그 상처를 보고도 징그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말해줬고, 서툰 손길로 약을 발라줬다.

내가 상처가 흉측하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다시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

참 고마운 사람이다.

나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내가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사람.


이쯤 되면 "그렇게 좋은데 왜 헤어졌어?" 하는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이유는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확실하고도 어려운데,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방향이 갈렸기 때문이다.

자세한 방향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꿈이 생겼고 꿈에 걸맞은 인생관이 생겼다. 세상을 보는 눈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양립이 불가능해서 누군가는 희생을 해야 하는 상황.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도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도 사랑했기에, 서로를 희생시키기도, 자신이 희생하기도 싫었다.

그래서 헤어졌다.

이별도 나름 아름다웠다.

편지를 주고받고, 마지막 포옹을 나눈 뒤 헤어졌다.


헤어진 뒤 괜찮아지면 친구로라도 지내자고 했지만, 친구로 지내지는 못했다. 그날 이후로 얼굴 한 번, 목소리 한 번 들은 적 없다.

기억은 생각보다 빨리 잊혔고 이제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그와 있었던 사건 위주의 기억만 남았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이별 후 3년 하고도 반이 지났다.

나는 요즘 진지하게 새로운 연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잊고 살던 그를 떠올렸다.

그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온전히 이별하지 못했던 것인지 나는 시작을 하지 못한다.


무언가 새로 시작하려면 이전 것을 완벽히 끝내야 한다.

이제는 정말 끝내보려 한다.

다음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지금은 작은 약속도 두렵다. 그 약속도 언젠가 깨어질까 봐.

그가 한 번만 더 말해줬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아"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0화나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