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를 읽고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는 것이 꿈이었다. 바다와 골목이 익숙한 도시에서 자라며,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질 것이라 믿었다. 서울은 늘 ‘더 큰 세상’의 다른 이름처럼 느껴졌다. 그 꿈은 온전히 내 것만은 아니었다. 말로 꺼내진 적은 없었지만, 부모님 역시 내가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길 바랐을 것이다. 집 안의 공기, 친척들의 말투, “말은 제주로 가고, 사람은 서울로 가야지.” 같은 문장들 속에 섞여 있던 기대가 내 선택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북쪽으로 밀어 올렸다. 나는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고, 그 방향이 옳다고 믿으며 자랐다.
그렇게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녔고, 남녀 차별 없이 경쟁하는 세계에 들어섰다. 적어도 학교와 취업 시장에서는 성별이 결정적인 변수가 아니라는 감각이 있었다. 어떤 순간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유리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능력과 태도가 평가의 기준이 된다는 믿음 속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임신과 출산 앞에서 그 믿음은 예상보다 쉽게 흔들렸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여전히 ‘여자의 영역’으로 호출되었고, 나는 두 번의 휴직을 거치며 의도하지 않게 커리어의 흐름에서 이탈했다. 제도는 존재했지만, 제도를 사용하는 순간 개인의 경력은 자연스럽게 중단되었다.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근대적 약속은 출산이라는 사건 앞에서 균열을 드러냈다. 평등하다고 믿었던 세계는 생애 주기의 특정 국면에서 다시 성별을 호출했다. 나는 그 틈에서 방향을 잃은 채 서성이고 있었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나의 고민을 다른 언어로 번역해 주는 책이었다. 이 책은 박승오, 홍승완 두 저자가 쓴 커리어 에세이로, IMF 외환위기와 코로나19를 거치며 급격히 변한 노동 환경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한때 회사는 울타리였고, 조직에 충실하면 안정적인 노년이 보장될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정규직은 줄어들고 구조조정은 상시화되었으며, 인공지능은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체하고 있다. 기대수명은 100세를 향해 늘어났지만, 직장의 수명은 그만큼 길어지지 않았다. 저자들은 이런 현실 앞에서 기존의 ‘패스트 커리어’ 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경력을 뜻하는 영어 career의 어원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마차의 경주 트랙’을 의미하는 라틴어 carrus라는 설명은,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경쟁과 속도를 전제로 일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분명하게 말한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깊이다.” 더 빨리 올라서는 것보다,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자립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는 일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저자들은 ‘슬로 커리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슬로 커리어는 일을 줄이거나 대충 하자는 말이 아니다. 얼마나 빨리, 얼마나 높이 가느냐보다 얼마나 자기답게, 오래 지속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커리어를 다시 설계하자는 요청이다. “모두가 경주용 트랙에서 미친 듯이 질주할 필요는 없다”는 문장은, 내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경쟁의 리듬을 멈춰 세운다. 뒤처질까 봐 속도를 늦추지 못했던 마음이, 이 문장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인디 워커는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한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인디 워커는 회사 안에서도 차별적인 전문성을 갖춘 자립적인 직업인이고, 퇴직 이후에도 자신의 역량으로 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저자들은 “회사를 학교 삼아 자신이 배울 수 있는 모든 기본기를 배우며 때를 기다리라”고 말한다. 이 문장은 특히 오래 남았다. 회사를 떠나지 않고도, 회사에 매몰되지 않는 태도가 가능하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를 위해 일한다는 말이 곧 퇴사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복직을 앞두고 있던 내게 현실적인 위로로 다가왔다.
책의 논의는 결국 한 질문으로 수렴한다. “나는 누구인가.” 무수한 진로 고민의 본질은 내가 진정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원하며, 어떤 가치를 실현하고 싶은지 모른다는 데 있다는 지적이다. 저자들은 강점, 소망, 가치관이라는 세 가지 질문의 교차점이 곧 ‘나’라고 말한다. 나는 그 질문을 오래 미뤄왔다. 대신 아이의 미래를 말하는 방식으로, 혹은 제도와 환경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나 자신의 질문을 우회해왔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아이의 삶을 이야기할 때마다 사실은 내 삶의 미완을 함께 말하고 있다는 점을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워졌다.
이제 나는 부모가 되었고, 아이가 해외에서 살아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꼭 미국일 필요는 없고, 한국을 벗어나 낯선 언어와 기준 속에서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는 삶을 경험해보았으면 한다. 그 바람은 아이를 위한 조언처럼 들리지만, 실은 내가 선택하지 못했던 삶의 조건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선에 가깝다.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말하면서,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게 같은 말을 건네고 있다. 부모의 바람이 내 꿈이 되었듯, 내 미련과 희망 역시 아이에게 조용히 건너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남는다. 그래서 이 바람이 아이의 가능성을 넓히는 말이 되려면, 먼저 내가 내 욕망의 형태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최근 누군가 아이가 어떤 삶을 살았으면 좋겠냐고 물었을 때, 나는 회사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외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 대답 속에는 내가 여전히 품고 있는 질문들이 겹겹이 들어 있었다. <인디 워커』는 이런 상태를 외면하지 말라고 말하는 책이다. 진로와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결국 자기 이해의 문제이며, 그 질문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강조하는 ‘사색할 줄 아는 능력’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자신을 지탱하는 기술에 가깝다.
복직을 앞둔 시기에 읽은 “나를 찾겠다고 퇴사하지 마라”라는 문장은 내 일상을 다시 정렬해 주었다. 회사로 돌아가는 선택이 도피도 패배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회사 안에서도 충분히 나를 위한 경력 관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 책은 패스트 커리어가 번아웃을 부르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과정을 짚어내면서, 슬로 커리어가 오히려 장기적인 소득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한다. 급여의 크기보다 전체 인생에서의 평균 소득과 삶의 지속 가능성을 보라는 관점은, 숫자에 익숙한 현실 감각과도 충돌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은 늘 구체적인 숫자와 일정으로 나를 붙잡는다. ‘40대 해외이민’을 검색하다가 브라우저를 닫고 다음 달 학원비를 계산한다. 엑셀 표 속 숫자들은 지나치게 정확해서 상상을 빠르게 접게 만든다. 아이가 잠든 방을 지나며 이불을 끌어 올리고, 부엌에 남은 설거지를 바라본다. 삶은 이렇게 사소한 일들로 이어진다. 그래서 꿈은 늘 ‘나중에’와 ‘언젠가’ 뒤로 밀린다. 다만 이 책은 꿈을 멀리 두지 않는다. 슬로 커리어는 언젠가 시작할 선택지가 아니라, 지금의 일상 속에서 깊이를 쌓아가는 태도라고 말한다. 빨리 달려 소진되는 대신, 오래 갈 수 있는 리듬을 만드는 일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인디 워커, 이제 나를 위해 일합니다>를 덮으며 남은 질문은 단순하지만 무겁다. 나는 어떤 환경에서도 내 이름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는 회사를 울타리로만 사용할 것인가, 아니면 나의 직업을 만드는 학교로 삼을 것인가. 아이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마다 내 꿈이 따라 나온다면, 이제는 그 꿈을 아이의 말로 숨기지 않고 내 언어로 다뤄야 한다. 느리더라도 방향성을 분명히 하는 사람, 속도보다 깊이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 책은 ‘나를 위해 일한다’는 말이 결단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설득하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생각해 놓고도, 결론은 단순하다.
그래서 너는 결국, 회사를 다니겠다는 거지? 너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