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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May 12. 2023

우리 모두 마음의 병이 있다  

<아몬드>를 읽고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 그게 너로구나!"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편도체의 크기가 작고 뇌 변연계와 전두엽 사이에 문제가 있어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시오패스, 범죄자가 되지 않은 것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전적인 사랑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그는 '괴물'이지만 할머니와 엄마에겐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자, 아들이다.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괴물'이라고 불러주는 할머니, 엄마, 친구들의 사랑이 이 소설의 핵심인 것 같다. 주변인들의 사랑이 있기에 그는 타인과 관계를 맺을 용기가 생기고, 슬픔에 공감하며, 성장해 갈 수 있다.


<아몬드>를 읽으면서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친구와 함께 찍었던 단편 영화 <웃어봐요 봉자 씨>가 생각났다. 선천적으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봉자 씨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며 감정 연습을 하고 결국 변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제목도, 내용도 가물가물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주인공 설정이 <아몬드>를 읽으며 다시 떠올랐다. 당시 내가 왜 이런 스토리에 매료되었을까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나 자신의 감정 변화뿐 아니라  타인의  감정에도 굉장히 민감한 편이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그게 다 느껴지고 공감될 때가 많다. 그래서 그것이 어떨 땐 너무 괴롭게 느껴졌다. 한동안 사회 뉴스를 이 애 보지 않았다. 사건사고, 이해되지 않는 정치, 사회 이슈를 접할 때마다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마음이란 게 어떤 물건이라면 가끔 몸속에서 꺼내서 깨끗하게 씻어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문제는 감정을 느끼는 것은 예민한 반면,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한 없이 미숙하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나를 답답해했던 부분도 이것이었다. 마음이 상하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다. 백화점에 데려가서 옷을 골라 보라 하여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어서 엄마가 화를 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싫은 감정도, 좋은 감정도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감정 표현이 풍부한 엄마로서는 답답했을 테다. 나는 그게 감정 표현을 하라는 강요로 들리면서, 점점 더 표현이 어려워졌다.  나는 어딘가 고장 난 채로, 마음의 병을 앓는 윤재의 상태로 살아갔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내 아이에게만큼은 감정 표현을 잘할 수 있게 교육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고장 난 채로 그냥 살면 된다 생각지만, 이걸 내 소중한 아이에게 물려줄 수는 없다.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한다. <아몬드> 속 윤재가 받았던 사랑을 이제와 내가 부모님께 달라고 떼쓸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아이에게 줄 수는 있다. 그러고 보면 육아는 어린 시절 내 내면 아이를 위로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한국에서 <우리 아이 행복 프로젝트>라는 사설 프로그램으로 마음공부를 하기도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생겼을 때 이걸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서로 이야기해보고 실생활에서 연습했다. 아들도 배우지만, 나도 같이 배우는 부분들이 많다. 아직도 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다. 화가 나면 입을 다물기도 한다. 그래도 아들과 함께 변화해 가려고 노력 중이다.


오은영 박사님 신드롬을 필두로 '마음 다스리기', '감정 조절'이 화두이다. 요즘 감정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아몬드>가 전 세계적으로 공감을 받고 있는 걸 보면, 굳이 선천적인 문제가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 모두 후천적 마음의 병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감정 소모를 강제로 차단시켜 버리고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사는 것은 참 편리하다. 하지만 ATM기계에서 아이가 순풍 만들어지지 않는 듯, 마음 다스리기 게임 패치가 있지 않은 것처럼, 정말 소중한 건 편리하지 않을 때, 힘들 때 얻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 <아몬드> 20여 개국에 번역 수출되었다고 합니다. 그중에서 국내/영문/스페인 판 표지 일러스트예요.

+ 소년의 뒷모습을 묘사한 스페인 판도 멋지고, 색감의 대비가 눈에 들어오는 영문 판도 멋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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