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초등학교에서 슬프고 무서운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단 소식이 들려온다. 어느 집안의 자식이 귀중하지 않을 리 없고,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 리 없지만. 내 자식만 중요하다는 이기심, 내 마음만 중요하다는 미성숙한 태도가 이런 사태를 촉발시키는 게 아닌지 나 자신부터 살피게 된다.
미국은 한국보다 1년 일찍 공교육을 시작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작년에 아들은 미국 초등학교 킨더로 입학했다. 아들은 처음 학교에 입학했을 때 눈에 띄게 예의 바르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자기감정을 크게 이야기하는 것,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웃긴 말이나 표정을 보이는 것들...
사실 그것들은 한국에서 그동안 내가 귀엽다고 웃고 넘긴 행동들이었다. 아들은 평소와 똑같이 한 것인데, 내가 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었다. 아들은 갑자기 ‘초등학생’이 되었고, 둘째가 태어나 ‘오빠’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낯선 미국에서 나는 아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길 바랐다.
그러고 보면 6-7살은 참 애매한 나이다. 아기라기엔 너무 컸고, 어린이라기엔 아직 어린 나이. 몸은 다 큰 어린이 같은데, 아직 행동은 아기 같아 보일 때 내 마음은 초조해졌다. 그래서 나는 내 멋대로 아들에게 잣대를 바꿔가며 들이댔다. 한국에서는 다 큰 아들을 ‘아기’로 대하다가 미국에 와서야 갑자기 ‘바른 어린이’로서의 자세를 요구했다.
작년 여름, 미국에 처음 와 영어가 지금보다 더 익숙하지 않았던 그때(사실 지금도 잘 못하지만), 나는 아들이 '바른 어린이'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 "I'm sorry."라고 아들 대신 급하게 말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더 훈육을 하려면 한국어로 아들에게 말해야 하는데,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그 말을 이 애 알아듣지 못해 더 오해를 살 것 같았다.
내가 그 주변인, 그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I'm sorry if she was upset. My son shouldn't have said that. (또는 My son shouldn't been that way.) We're going to go home and talk about this some more.”
*be that way: 그런 식으로 하다
내가 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Imagine you're that girl. If you were in her shoes, you'd feel really bad.”
* to be in someone’s shoes: [누구] 입장이라면
그렇게 1년간 혼돈의 시기를 보내고, 미국 생활 2년 차에 접어들었다. 이제 아들은 조금씩 차분해지고, 나 역시 내가 아들에게 많은 걸 요구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바른 어린이'의 자질은 한 번에 가져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키워나가야 하는 능력인가 보다.
이제 내년에 아들은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할 것이다. 예비초등으로서 많은 준비를 해야겠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들이 ‘상대 입장을 한번 더 생각해 보는 힘’을 가지는 것. 남은 1년 동안 수학책이나 영어책 한 권을 더 보기보다는, 아들이 제대로 된 마음가짐아들이 그것만은 연습해 갈 수 있길 바란다.
+ 그런데 장난꾸러기였던(물론 지금도 장난꾸러기 이긴 하지만) 시절 사진을 찬찬히 다시 훑어보니, 사진으로 보는 아들은 참 귀엽긴 하다. 어느 순간 훌쩍 커버려서 지금의 이런 모습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