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웃음소리 Dec 06. 2023

어쩌다 맛집 체험단_1

블로그를 시작하라고요?

펜션 사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느냐고.


펜션 청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기로 한 날. 사장님은 약속시간에 많이 늦었다. 게다가 질문까지 이상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느냐니. 혹시 펜션 홍보를 원하시는 건가 싶었다. 아니었다. 사장님이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정말 좋다며 처음 만난 나에게 블로그를 시작해 보라고 적극적으로 권했다. 한 달만 열심히 하면 제주에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 그냥 갈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귀담아듣지 않았다. 아니, 약속시간에 예고도 없이 늦더니 나한테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권하시는 걸까 하고 의심부터 했다. 열심히 일해서 당당히 내 돈 주고 사 먹으면 되지 공짜 밥은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나는 글 쓸 줄 모른다고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더군다나 매일 인스타에 기록을 남기기로 마음먹고 실천하는 중이었는데, 그 마저도 빼먹는 날이 생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줄로만 알았던 제주의 겨울은 육지촌놈들에겐 매섭게도 추웠다. 제주에서 지낸 지 몇 개월이 흘렀다. 삼식씨가 받는 육아휴직 급여와 펜션 청소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기는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마이너스를 뺀 숫자가 통장 잔고이길 바라게 될 만큼 마이너스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자릿수를 늘리며 포동포동 살을 찌우고 있었다. 밥값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기엔, '제주'였다. 마이너스 통장을 살찌우고 있긴 했지만 마음은 해맑았던 나와 삼식씨는 군고구마 모자와 귀마개까지 대동해 추운 겨울에도 바지런히 집을 나섰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집을 나서서 오름이나 바닷가 산책을 끝내고 나면 밥을 사 먹어야 했다. 도시락을 싸볼까, 고구마나 바나나를 싸 다닐까도 생각해 봤지만, 내 역량 부족으로 가성비 밥집을 선택하는 쪽을 택했다. 삼식씨는 갈치조림을 좋아한다. 하필 비싼 걸 좋아해 가지고는. 그냥 햄버거나 돈가스 좋아하면 될걸. 냠냠쩝쩝 맛있게 먹는 삼식씨가 보고싶긴 했지만, 우리에게 갈치조림은 사치였다. 항상 만 원 안쪽의 식당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늘 짜장면, 햄버거, 돈가스나 점심특선 한식이었다. 식당에 가서 지글지글 고기를 구우며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제주에서 흑돼지는 1인 분에 2만 원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런 날엔 '아니 흑돼지고 백돼지고 제주 돼지고 부산 돼지고 그냥 돼지인 건 마찬가지인데 제주 돼지는 금 먹여서 키우나 왜 이렇게 비싼 거야.' 하고 괜스레 투덜대며 올라온 입맛을 사그러트리고는 마트에서 세일 중인 돼지 뒷다리살을 쟁였다. 카페는 생각지도 않았다. 아주 가끔 정말 가고 싶을 때가 아니고는 카페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다. 카페인에 초 예민한 바리스타 삼식씨가 내려준 커피를 보냉병에 살뜰히 싸들고 다녔다.


그렇게 밥값과 커피값을 아끼며 바지런히 집을 나서던 어느 날. 펜션 사장님에게 카톡이 왔다. 사장님이 2월부터 블로그 코칭을 시작할 예정인데, 나는 본인의 직원이니까 특별히 공짜로 코칭을 해 주겠다며 함께 해 보겠느냐고 했다. 펜션 청소 아르바이트생에게 이런 신박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복리후생이라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생각하는 나인데. 사장님의 공짜라는 말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득과 실을 따져 보았을 때 딱히 실은 없는 것 같았다. 몇 개월 전 사장님이 블로그 얘기를 꺼낼 때 마음속으로 내 돈 주고 사 먹으면 된다며 콧방귀를 뀌고 선을 긋던 나였는데. 궁해지니 솔깃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아님 말고' 하는 마음으로 못 이기는 척 사장님께 깨톡을 전송했다.




"그럼....... 한번 해볼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