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가니까 더 생각나서 쓰는 여행의 순간
[도쿄-우에노공원]
우에노 공원은 벚꽃놀이 명소로 유명하지만
때는 바람이 아직 찬 이른 봄이었다
3박4일간의 나홀로 도쿄여행에서
마지막 일정으로 우에노 공원을 넣은 건
우선 아사쿠사와 가까워
일정짜기에 편했고
가까이에 커다란 역이 있어
하네다 공원까지 연결된 공항 철도를
바로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서 하는 여행은 처음이었던
스물두살의 나는
모든 여행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에 이르렀다는 안도감과
나 자신에 대한 대견함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내 첫 도쿄 여행에서 기억나는
가장 또렷한 여행의 장면은
바로 이 날 오전이지만,
사실 아무것도 특별한 걸 하진 않았다
그저 음악을 들으면서
주변을 둘러보고
걷고 또 걷다가
가끔 사진을 찍었다
그 날 찍은 사진들은
용도도 모르는 공원 안 건물,
간식으로 사먹은 타코야끼,
근처 박물관 입구 등등의
우리나라의 여느 공원을 가도
크게 다를 바 없을 듯한 풍경들이 전부다
그렇지만
선명하게 행복했던 그날의 시간은
일상의 지루함을 견뎌가며
틈틈이 여행을 꿈꾸는
내 오랜 취미의 기원같은 기억이 되었다
그 날은
그랬다.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이어폰을 통해 내 귓속에서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채우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진부하다고해도 어쩔 수 없는 표현이지만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이 아름답고 특별한 곳으로 보였다
특별하게 '보인'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세상은 그렇게 특별히 아름다운 곳인데
그때에만 그걸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취직이 결정되고 한번 더 도쿄를 찾았을 때에도,
몇해 전 출장으로 도쿄를 방문했을 때에도,
시간을 내서 우에노 공원에 갔다
생전 처음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본 것마냥
상기된 표정으로
부지런히 공원 이곳저곳을 총총 돌아다니던
앳된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우에노 공원
그날 그 시간처럼 지금을 살 수는 없을까
그게 바로
염원해 마지않는
일상을 여행처럼 사는 감각일텐데
그러나 나의 염원은 번번히 이뤄지지 못한다
아쉽게도
그러나 가끔
라디오에서 그날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오거나
이마에 선선한 바람이 와닿을 즈음의 계절이면
아
하고 떠올린다
그리고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살다가 문득
아
하고 떠올릴 수 있는 내 인생의 장면 하나 가진 걸로
아
여행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