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뇌경색에 걸려 말도 잘 못하는 아빠가...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셨다.

by 정겨움

아빠의 식탁에 책이 펼쳐져 있다.

늘 보는 성경책 인가 하고 유심히 보지 않았는데, 밥을 먹으려고 치우다 보니 중국어 책이다.


왼손으로 삐뚤삐뚤 쓴 글씨도 한편에 있다.

‘니하오 - 안녕하세요. 씨에씨에 - 감사합니다.’


아빠의 중국어 공부.





아빠는 김치공장을 운영했다. 중국에 몇만 평이 넘는 땅에 중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김치 공장을 설립했고, 어설프게 중국말을 배워서 오랜 기간 중국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했다. 아빠가 쓰러지신 후, 공장은 오빠 명의로 넘어갔다.


본인이 언어의 어려움을 많이 느끼셨기에 그랬을 거라 추측이 되지만 아빠는 중국 어학연수를 권했다.


“앞으로 중국이 세계 1등의 나라가 되는 시대가 올 거야.”


해외 출장을 밥먹듯이 다니던 아빠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광고홍보를 전공한 나는 당시 애들이 다 호주로 어학연수를 갈 때, 혼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언어를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정말 재밌게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몰랐던 언어 소질도 있었고, 젊은 나이(?)였기에 중국어를 빠르게 습득하고 아빠를 만나러 중국 공장에 찾아갔다.


그때, 아빠의 중국어를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런 발음으로... 10년 넘게 이 공장을 운영했다고?’

물가에 내놓은 아가와 같이 아빠가 불안해 보였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아빠를 내가 보살펴야 하는 존재로 느껴진 것이.


그 감정이 못내 불편하고 견디기 어려워 북경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한참을 울었다.





“아빠 이거 중국어 공부하는 거야?”

“응”

“누구랑?”

“혼자.”

“혼자서? 어휴~ 열심히 했네~”



‘한국말도 제대로 지금 못하는 데 무슨 중국어야!!’

말하고 싶은 속마음을 숨겼다.


칠순이 넘은 우리 아빠는 한 손을 쓰지 못하고, 말을 할 때 단어를 엉망으로 말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를 때가 더 많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벌써 좌절하고, 삶을 무기력하게 살 법도 한데,지치지 않는 무한 열정을 갖고 사는 아빠는 ‘중국어를 공부하겠다고’ 책을 사서 보고 있고, 매일 새벽 4시 공원을 3바퀴씩 돌며 운동을 한다.


아빠가 그렇게 살아줘서

딸내미는 ‘feichang xiexie (매우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아빠의 모든 노력들을.


기억하고 싶어요.

좌절 없이, 끝까지 끝까지 앞으로 발걸음을 옮긴

아빠의 오늘 하루도.


20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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