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엄마의 가구를 훔쳤다.
두 번의 이혼을 겪었다.
한 번은 10살 때, 두 번째는 20대 중반에.
그 반복되는 과정 속에 아빠는 동일 인물이었고, 엄마가 달라졌다.
첫 번째는 나를 ‘키워주신’ 엄마와의 이혼이었고,
두 번째는 나를 ‘낳아주신’ 엄마와의 이혼이었다.
정신적으로 성숙한 상태에서 한 이혼이 후자였지만 타격은 컸다. 두 번이나 이혼한 집의 딸로 시집이나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이혼을 두 번이나 겪어보니 왜 어른들이 ‘이혼한 집의 자식을’ 며느리나 사위로 원치 않는지 백번 공감된다.
세상 찌질해도 이렇게 찌질할 수가 없고, 치사빤스의 끝을 보이며, 소송에서 이길라고 녹취하고 주변 사람한테 증언받고....이혼이라는 거대한 폭풍우 속에서 아이가 안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혼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른들이 하게 되는 확률이 높으며, 밥벌이와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정체절명의 순간에 ‘아이가 겪을 정서적 아픔’까지 깊게 고민하는 부모는 드물다.
나의 경우도 그러했다.
지금도 친엄마랑 얘기하다가 어이가 없어서 웃는 일들이 있는데, 아빠가 한 유치뽕짝한 행동들이다.
두 번째 이혼 때 아빠는 엄마에게 ‘일푼도 주고 싶지’ 않아했다. 엄마는 아빠의 재산에 이미 가압류를 신청한 상태로 소송에 들어갔고, 아빠는 사업을 해야 하는데 돈을 움직일 수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둘의 분노 게이지는 나날이 높아져갔다. 엄마는 아파트가 본인의 명의로 되어있으니 나가라고 했다.
아빠는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나갈 테니 기본적인 가구는 들고나가게 해달라고 했지만, 엄마는 ‘다 내가 산 거니’ 안된다고 했다.
그러자 아빠가 엄마가 없는 틈에 집에 와서 가구를 하나씩 가져갔다.
엄마는 세트로 구성하는 걸 좋아해서 안방이며 거실이며 모든 가구를 세트로 구비했는데, 아빠가 그 세트 중에 하나를 몰래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장식장으로 시작된 아빠의 빼내기 기술은 날이 갈수록 대범해져셔 안방에 깔려 있던 이불들과 테이블, 소파세트까지 사라져 갔다.
몇 번의 경고 끝에 엄마는 결국 집 열쇠를 바꾸고 비밀번호를 바꿨다. 아빠는 더 이상 집에 몰래 들어올 수 없었다.
지금 아빠가 혼자 사는 집에는 엄마가 세트로 구비했던 장식장과 소파세트, 이불이 그대로 있다.
아빠는 그 가구들을 정말로 아낀다.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엄마가 아빠 집에 와서 그 가구들을 보면서 타박을 준 적이 있다.
“어머나~ 이 가구들 정말 오랜만에 보네!!”
“뭐. 가...?”
“이거! 이것도! 옆에 저것도! 아니.. 근데 그때 내 가구들을 왜 가져간 거야?”
“무슨... 내 거야.”
어수룩한 발음으로 아빠는 또렷이 말했다.
‘네 것이 아닌 내 것이라고’
..........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고, 웃었다.
누가 아빠를 이기겠어!
아버지 만쉐!
어디에 부끄러워 말은 못 했지만...
돌이켜봐도 참말로 유치뽕짝했던 시절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다 어른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잘 헤어질 수 있는 사람과 만나라고 공지영씨가 왜 말했는지 구구절절이 와 닿았던...
아빠의 바닥에 식겁했던 그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