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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Dec 27. 2019

동생인 네가 싫었어.

세상 하나뿐인 언니의 취중고백

어릴 때부터 언니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다. 3살 터울인 언니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고, 친구들과 놀면 끼워달라고 생떼를 부렸다. 언니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고, 나는 활발하고 말이 많은 성격이었다. 구분하자면 언니는 ‘곰’과, 나는 ‘여우’과라고나 할까? 뭐라고 조금 혼내면 따박따박 대꾸하는 어린 동생이 버거웠던 것 같기도 하다. 말싸움을 하면 늘 우는 쪽은 언니였으니 말이다.


‘엄마. 전 겨움이가 말을 너무 안 들어서 속상해요.’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초등학생이었던 언니가 엄마에게 썼던 편지를 훗날 발견했을 때 웃음이 났다. 정말 언니 말을 더럽게도 안 들었었구나! 그런데 크면서 나는 오히려 말을 잘 듣는 모범생으로 자랐고, 언니가 날라리가 되었다.  중학생이면서 머리를 샛노랗게 염색했고,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셨다. 그런 행동으로 맞은 것만 수백 번이 넘었는데 그렇게 꾸준하게 거짓말을 하고 일탈하는 언니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위안이 되지 않는 공포스러운 가정에서 자란 언니에게 유일한 숨통은 밖의 친구들이었던 것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언니가 남자친구들과 놀아서였는지, 담배를 걸려서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작은오빠에게 엄청나게 맞은 날이 있었다. 이층에서 오빠가 욕하고 때리는 소리가 고스란히 일층까지 전해져 오는데 나는 언니를 구하러 가다가 같이 맞을까봐 무서워 움직이지 못했다. 울음소리와 "잘못했어요."라는 말이 한 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무식한 오빠의 손에 언니가 죽을까 봐 이층으로 가는 문 앞 소파에 앉아 울면서 소리를 들었다. 너무 놀라고 긴장돼서 그런지 다리 한쪽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나거나, 폭력적인 상황 앞에 놓이면 사시나무처럼 몸이 덜덜 떨리고, 손 발에 피가 통하지 않는 저림을 느낀 것이.


언니가 약국을 돌고 돌아 우울증 약을 잔뜩 사서 숨겨 놓고 나에게만 몰래 말해줬던 적이 있다. 자고 일어나면 언니가 죽어버릴까 봐 무서워 엄마에게 몰래 말해줬다.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는 언니와의 약속을 깨고 몰래 말한 행동은 오랫동안 나를 불편하게 했다.  


나를 키워줬던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서 언니도 함께 갔다. 언니는 가끔 집으로 전화도 하고,


- 언니는 겨움이가 보고 싶어. 지나가다 겨움이 또래의 아이들을 보면 한참을 쳐다보곤 해. 겨움이도 언니 생각을 할까?’라고 다정하게 편지글을 써주기도 했다.  


친엄마와 아빠가 합치면서 두 번째 가정이 생긴 후, 할리우드 같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것 중에 하나가 명절이면 언니 오빠가 다 우리 집에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언니 오빠들은 불편하기 그지없었을 아빠의 두 번째 가정에서 명절을 보내곤 했다. 그렇게 일 년에 두 번씩 왕래를 하면서 언니를 따로 볼 수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 언니와 처음으로 술을 마셨다. 언니는 소주를 주로 마신다기에 소주를 같이 마셨는데, 기분이 묘했다. 언니도 그런 듯했다. 약간의 취기가 오르자 언니가 말했다.


“겨움아. 난 사실 밖에서 동생 없다고 말해. 내가 막내라고.”

“이해해. 우리가 떨어져 산 지 오래되었잖아. 나도 밖에선 내가 장녀인 줄 알아.”

“영락없는 막내인 네가?”

“응. 웃기지?”

“그러게 ㅋㅋ 근데 난 솔직히 너 정말 싫었어. 네가 있어서 우리 집이 이혼한 것 같았고, 네가 있어서 내 엄마가 너무 힘겹게 사신 것 같았어.”

“…”

“근데 어느 날 엄마가 그러더라? 넌 잘못 없는 거라고. 다 어른들이 잘못한 거라고. 그래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  


내 존재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팠을지 안다. 공감을 100%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가늠은 할 수 있다. 그 사람들이 나를 키워주고, 어린 시절 내 추억의 팔할인 가족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날 아프게 한다.  


언니와 나는 그 이후로 한 동안 잘 지냈다.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에는 더욱 돈독하게 연락했고, 서로를 위로하며 버텼다. 키워주신 어머니가 아빠 몰래 아빠와 혼인신고를 한 걸 내가 알게 되고, 그 증인으로 큰 오빠와 언니가 문서에 사인을 하게 된 것을 알기 전까지 말이다.


법정에서 언니를 마주친 적이 있다.

언니와 나는 각자의 엄마 곁에 서 있었다.


우리는 스쳐 지나갔다.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세상 하나뿐이었던 언니가

내 삶에서 지워졌다.


우리가 커서 다시 만난 어느 명절날, 언니가 립스틱을 준 적이 있다. 언니는 바르다가 이제 색이 맞지 않아서 바르지 않는다면서 하얀 피부인 네가 바르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줬다. 같이 살았다면 난 언니의 예쁜 옷과 가방을 몰래 입고, 화장품도 몰래몰래 바르고, 그러다 들켜서 혼나고 싸우고 울고 불고 했을 텐데... 무심코 건네 준 언니의 립스틱을 오랫동안 바르고 다녔다.


그 립스틱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지금도 우린 아빠의 집에서 가끔 마주친다. "잘 지냈어?" "응."  짧은 인사 후, 무거운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언니는 먼저 나간다. "잘 가." 인사를 한다. "서울 잘 올라가고." 언니도 인사를 한다.


우리는 이제 립스틱은커녕 다정한 인사도 건네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동생인 나의 존재가 싫었다고 언니가 술에 취해 말했을 때, 차마 말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


-난 한 번도 언니가 싫었던 적이 없었어.


우리의 사이는 이제 끝났고,

더 이상 평범한 자매가 될 수 없지만

난 참말로 언니를 많이 좋아했었다.


언니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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