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다이어터가 된다.

180도 바뀐 나의 일상

by 안스

엄마의 다이어트는 거의 두 달째 계속되고 있어.


이제 나의 일상에도 이 프로젝트는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


불과 몇 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피곤한 눈을 끔벅끔벅 움직이며 커피믹스 한 잔을 찐하게 마시고, 네가 먹다 남긴 유아용 시리얼 혹은 주먹밥을 입안에 털어 넣고, 그걸로는 모자라 국수그릇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날 정도로 당이 많이 들어간 시리얼을 후루룩 말아먹었지.


네 동생이 낮잠 자는 시간에는 옆에 같이 누워서 까무룩 모자란 잠을 자고, 허기가 질 때쯤 네 아빠와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회의를 해. 어제는 돈가스 먹었으니까 오늘은 라면 먹자. 이런 식으로 말이야.


2명이지만 항상 라면은 3개를 끓여서 TV를 틀어놓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하루치 나트륨을 초과하는 점심을 후다닥 해치운 후에, 입안에서 맴도는 짠내를 없애기 위해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오지. 물론 아이스 바닐라 라떼야.

오후의 육아를 씩씩하게 해내기 위해선 당 충전은 필수거든.


카페인과 당의 힘을 받아서 자잘한 집안일들을 해 놓고 네가 하원하기 거의 2시간 전부터 엄마와 아빠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 거의 무언의 합의 같은 건데, 이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TV를 보거나 또 숏츠를 봐. 이때 움직이는 건 리모컨 위의 손가락과 두 눈동자뿐이야.


네가 집에 오면 저녁식사를 먹기 전까지 입이 좀 심심하니 우리는 간식을 먹어. 주로 과일이나, 과자, 우유 이런 것들이지. 너에게는 최대한 건강한 간식을 주려고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이제 어른이니까 조금은 불량한 간식을 먹어도 된단다. 유독 하루가 길게 느껴지는 날이면 그날의 육아 스트레스를 날리기 위해 엄마와 아빠는 누구보다 빠른 의견일치로 닭발 같은 야식을 시켜서 넷플릭스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해.


글만 읽어도 살찔 것 같지 않니?


근데 이제 엄마는 다이어터야. 그것도 아주 진지한.


지금 엄마의 하루는 말이야.

아침에 눈을 뜨면 두 다리를 천장으로 쭈욱 뻗어서 밤새 뭉친 근육을 스트레칭해. 그리고 체중계에 올라 어제의 나보다 몇 g이라도 줄었는지 확인하고 달력에 작게 적어놓지. 네가 아침 간식을 먹는 동안 엄마는 옆에서 단백질 셰이크를 후루룩 마시고 네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곧장 헬스장으로 직행해. ‘8:30분 전에는 출석한다.’ 이게 요즘 하루 퀘스트의 시작이야.


개인 운동이 있는 날이면 10분 스트레칭, 30분 근력운동, 40분 유산소 운동, 10분 마무리 스트레칭으로 총 1시간 30분을 알차게 보내고 집으로 와서 샤워를 할 때면 세상에,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어.


이왕 다이어트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싶어서 사실 엄마는 피티를 또 끊었단다. 헬스장에서 이벤트로 파격 할인가를 제시하기에 엄마는 또 결제할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과거와는 나와는 달라. 주 2회의 피티 수업이 있는 날이면 트레이너 선생님의 티칭을 하나도 빼먹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따라 하고, 다음 날에는 꼭 복습을 해서 혼자서도 제대로 운동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 세트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는 잠깐 수다에 빠진다 싶으면 냉큼 먼저 자세를 다시 잡고 다음 세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지. 집에서는 선생님이 찍어준 나의 운동하는 영상을 재생해 보면서 시뮬레이션도 해보고 말이야.


이제 엄마의 유튜브 알고리즘에는 예전처럼 먹방이나 맛집리뷰가 아닌, ‘체지방 줄이는 법’, ‘러닝머신 제대로 하는 법’ 등의 영상들이 자리하고 있어.


점심은 전날 만들어 둔 오버나이트 오트밀을 먹고, 커피가 생각나면 진한 아메리카노를 내려 먹어. 그래도 정말 당이 부족하다 싶은 날엔 그냥 커피믹스를 하나 먹어. 이 정도 길티 플레저는 있어야 지치지 않는 것 같아.


네가 하원하기 전에 간식이 생각나면 그냥 단백질바를 하나 뜯어먹어. 우리 집 간식 존은 이제 나에겐 그린벨트야. 엄마가 59.9kg를 보기 전엔 절대 그 구역은 침입불가야.


네가 저녁을 먹는 동안 엄마는 샐러드에 닭가슴살을 얹어서 우걱우걱 먹지. 네가 좋아하는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르스처럼 말이야. 트레이너 선생님이 샐러드는 많이 먹어도 된다고 했어. 이거라도 배부르게 먹어야 그나마 밤에 잠들 때까지 야식생각이 안 나.(사실 아예 안나진 않아…)


가끔 네 아빠가 오늘은 치킨에 맥주, 오늘은 닭발에 소주다 하며 온갖 나트륨이 들어간 말로 나를 설득하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넘어가지 않아. 그래서 요즘 네 아빠가 사는 재미가 없다고 해. 엄마는 요즘 살 빼는 재미로 살아.


그날의 운동이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자기 전엔 간단한 덤벨운동이나 폼롤러 스트레칭으로 보충해.

어두컴컴한 방에서 수유등을 켜놓고 폼롤러 위에 누워 허리 마사지를 하고 있으면 오늘 참 잘 살았다. 뿌듯해.


그리고 이렇게 다이어트 일기까지 쓰면 그날은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완벽한 날이지.


단지 마음가짐 하나만 바꿨을 뿐인데, 하루의 시작과 끝이 한 봉지의 견과류처럼 알차고 건강하게 흘러가고 있단다.

엄마는 대문자 J라서 이런 사소한 다이어트 루틴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만으로도 자존감이 올라가고 ‘갓생’ 살고 있구나 느끼거든. 참 단순하지? 몸무게가 크게 줄지는 않았어도 화장실 거울 앞에서 가끔 내 얼굴이 갸름해 보이고, 매일 입는 운동복바지는 오늘따라 조금 더 헐렁한 것 같아.


그렇게 엄마는 다이어터가 되고 있어.


‘다이어트’라는 하나의 목표가 이제 엄마의 일상의 구심점이 되었어.


이러다, 진짜 다이어트 성공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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