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상태가 좋다. 기상이 주중보다 늦었다. 보통은 07:00 알람에 맞춰 일어나고, 15분정도 뒹굴다 벌떡 일어난다. 주말은 조금 늦어도 된다. 그런데, 07:00에 일어난다. 조금 손해본 느낌도 나지만, 다시 자도 되니까 괜찮다. 한참 밍기적해도 08:00, 주중에는 이미 가방들고 마을 버스를 탈 시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하철 0호선과 0호선이 교차하는 곳으로 언제나 사람이 많다. 출근 시간에는 오죽할까. 주말에는 인파에 밀려 정신줄을 놓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나는 '오늘 아침에는 무엇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들떠있다.
찬장을 열어보니 쟁여놓은 식재료가 있다. 사실 식재료라기도 민망한 공산품 뿐이다. 달걀 30개, 간편밥 14개, 라면 몇개 정도 뿐이니 말 다 했다. 주말 한끼 정도는 집에서 해 먹는다. 먹거리가 없으니, 동네 슈퍼에 간다. 거리에 나설 때, 태양의 각도가 낯설다. 평소 이 거리를 걸을 때 만나는 그림자의 길이와 달라서 이 거리가 새롭게 보인다. 비단 거리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연령이나 성별이 달라져서 만은 아닐 것이다. 슈퍼로 향하는 짧은 시간동안 무엇으로 아침식사를 먹을지 생각해본다. 지난 주에 생닭을 사서 구워먹었으니, 이번 주는 목살을 구워먹을까?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
결국 손에 든 것은 후랑크 소시지다. 문어 다리로 구워진 소시지의 모습이 시각적으로 너무나 귀여워서 나도 만들어 먹어(?)버리고 싶어졌다. 나오던 중 계산대 옆에 맥주가 보인다. 자연스레 손이 간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를 한 잔 마실까 했다. 나는 흡사 커피 중독이다. 하루에 에스프레소 4잔 정도를 마신다. 아침을 깨우기 위한 한 잔, 점심 식사 전 한 잔, 식 후 한 잔, 식곤증 한 잔... 지금보니 최소 4잔 정도다. 더 마시고 있었다는 것을 세어보니 알았다. 동네 유일한 프렌차이즈 커피가게에 가려면 길을 한 번 더 건너야 한다. 이내 포기하고 집에 있는 카누커피를 마신다. 여름용으로 나온 아이스 커피가 찬 물에도 잘 녹는다.
커피 한잔, 달걀 후라이, 문어 다섯 마리, 밥 반 공기, 컵라면 한 개 정도면 충분하다. 사실 메뉴보다 동네 소음이 주는 적막감이 좋다. 조용하지만 외롭지 않다. 예측할 수 없지만 불안하지 않다. 볕도 공기도 가라 앉아 있어 아늑하다. 3주 전에 만든 나무 도마도, 이런 햇볕에서는 아주 잘 마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