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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파즈 May 12. 2020

몰입은 고요함을 불러온다.

에세이 #49


'마음이 가라앉는다.'


마음이 위, 아래로 움직이는지 알 수 없으나 이런 표현을 사용합니다. 마음이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알 수 없으나 한없이 마음이 가라앉은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생각은 우울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의욕은 상실하고 궁금증은 사라집니다. 불면을 겪고 신체적 컨디션은 바닥을 치기도 합니다.


아! 그런데, 그 와중에 식욕은 여전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식사량을 점점 늘려가기도 합니다. (^^;) 그런 우울감이 식욕을 자극해서 먹는 것으로 나라는 존재가 가진 공허함을 애써 지우려고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구에 찾아온 인간은 누구나 겪었을 것이고 또 겪게 될 과정입니다.


퇴근을 앞두고 직장 동료 D가 물었습니다.

팀장님, 오늘 힘드세요?
한숨을 자주 쉬시는 것 같던데.


아차, 싶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감정에 치우쳐 우울감이 마음에 찾아들어 완전히 잠식되어 버린 것입니다. 약간 겸연쩍어하며 말했습니다.

아니, 별 일 없는데~

 

퇴근길에 왜 우울한 감정을 느꼈는지 곱씹어 봤습니다. 딱히 이유를 찾지 못하는 가운데 우울한 감정을 찾기 위해 애쓰는데 더 우울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우울한 마음을 더 깊어 찾아가다 보니 더 우울한 감정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우울의 늪이 있다면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문득 '우울'이라는 감정을 심리학에서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 <2019 정신건강 검진도구 및 사용에 대한 표준지침>을 찾았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단 읽을 자료를 먼저 찾아보겠다는 마음이 들었으니 심각한 우울감은 아니었나 봅니다. ^^)


4가지 요인에 따라서 총 20문항으로 살펴보는데 신체 저하가 8문항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우울은 필연적으로 신체 저하를 가져오거나 신체 저하가 일어나면 우울이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역학연구를 위한 우울척도(CES-D) (전겸구, 최상진, 양병창 (2001))


01 신체저하(8문항) : 귀찮음, 식욕부진, 울적한 기분, 집중곤란, 우울, 힘듦, 말없음, 기운없음

02 긍정정서(4문항) : 능력있음, 희망적, 행복, 즐거움

03 대인관계(4문항) : 실패, 외로움, 차가움, 싫어함

04 우울정서(4문항) : 두려움, 수면, 울음, 슬픔


우울한 감정은 불쑥불쑥 찾아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오락가락하는 내 마음을 부여잡고 그러지 마라고 타이를 수도 없고 어떻게 마음이라는 녀석에게 접근해야 하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이런저런 메모를 하고 손으로 글을 써보며 한참을 보냈습니다.


최근에 다시 취향 저격당한 노래 '그대 내 마음에 들어오면(조덕배 가수님)'을 플레이했습니다. 지금 상황에 어울릴만한 책이 뭐가 있나를 살펴보다가 '게으름에 대한 찬양(버틀런드 러셀)'을 집어 들었습니다. 서문부터 읽었습니다.

불관용과 편협함, 그리고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력적인 행동은 그것 자체가 존경할 만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세계가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반 논제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 서문 중에서)


서문 한 장을 읽고 머리에서 맴도는 질문이었습니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 반복하며 보내는 시간 속에서 지쳐 있었나?

왜라는 질문을 뒤로 미뤄놓고 어떻게만 쫓은 시간에 대해 마음이 반응하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망각하고 편협한 시각에 갇혀 달리고만 있는 건가?



'몰입은 고요함을 불러온다.'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이니 단 5분 남짓의 시간이었고 책은 서문을 펴서 1장을 읽었는데 환경을 바꾸고 감각을 전환하니 차분히 몰입을 했고 생각을 정돈하고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고요함'이 찾아왔습니다. 깊은 밤, 고요함은 마음 문을 두드리고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돈하게 하고 엉클어진 마음을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몰입이 반복되면 고요함은 자주 찾아옵니다. 고요함과 가까이 지내다 보면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게 되고 나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나라는 존재가 가진 '좋음'과 '나쁨' 혹은 '선'과 '악'이 명료해지고 나를 구성하는 인식과 경험에 대해 해석이 가능합니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생을 살았던 사람에게 해석이 불가능한 과거의 사건은 반드시 마음 어딘가에 자리 잡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를 물고 늘어지거나 뒷걸음질 치게 하고 꼬마 아이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결코 다른 존재가 아니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과유불급'이라 지나친 몰입은 분명 부작용을 낳을 것입니다. 내가 규정한 세계가 온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면 어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겠지요. 그러나 일상에 찾아든 우울을 넘어서는 방법은 '잠깐의 몰입'입니다. 길지 않아도 되고 매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좋아하는 것을 듣고 읽고 느끼며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주변 환경을 바꾸고 잠깐의 시간을 나에게 내어주는 것. 열심히 살아가는 시간이 대다수인데 그 정도 게으름이야 괜찮지 않을까요? 러셀은 게으름에 대해 찬양하는 책까지 출간했는데. 물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도 되었고요.


잠깐 찾아온 봄이 스쳐 지나가듯 오늘 나를 잠깐 찾아온 우울이 그렇게 스쳐지나기를 바라는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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