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단하지 말자.
어느 정신과 의사가 소개한 마음 해석의 체계가 있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때 작동하는 두 체계는 크게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로 구별된다. 마음 읽기는 반사적으로 짐작해서 판단하는 것이고, 마음 헤아리기는 판단을 미루고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마음 읽기는 사실 거의 모든 상황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컨대 대화에 참여한 상대방이 나를 바라보며 갑자기 얼굴을 찡그린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하고 속으로 추측하게 된다. 추측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여기서 상대방에게 조심스레 얼굴을 찡그린 이유를 물어보면서 추측을 단정 짓지 않으면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지만, 문제는 추측을 속단하는 시점부터 발생한다. 마치 내 추측이 옳은 것처럼 속단해서 상대방에게 확증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다. 추측은 단지 추측일 뿐이다. 상대방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확실히 알 수 없다. 종종 추측이 맞는지에만 집중한 나머지 상대방에 대해서 다 안다는 듯 착각까지 덩달아 저질러버리게 된다. 여기서 착각을 바로잡지 않으면 또 다른 착각으로, 착각의 착각의 착각으로 이어진다. 한 번 착각의 굴레에 빠지면 스스로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에 마음 헤아리기는 상대방의 마음을 모른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질문을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얼굴을 찡그린 이유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면서 상대방이 혹시라도 어떤 사정이라도 있어서 그러는 건지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마음 읽기'와 '마음 헤아리기'라는 단어 자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싶다. 마음을 헤아린다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하지만 헤아려야 한다고 하자니 질문 수준이 어느 정도의 깊이가 요구되는 것처럼 인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차라리 '매사 물어봐야 한다'고 얘기하는 편이 훨씬 광범위한 상황에 쓰이기 쉽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상대방의 마음에 대해서 추측하는 건 어떻게 보면 인간에게 내재된 생존반응이다. 상황에 따라서 즉각적인 판단을 통해 실행한 행동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로 돌아오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시대의 인간과 인간이 서로 전투를 시작할 때 상대방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의도를 다 따져봤다가는 내가 먼저 죽기 십상이다. 그러나 대화에서는 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하고 싶다면 '매사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
매사 물어보는 것은 되려 서로 간의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처음에는 이것저것 물어봤다가 상대방이 점점 편안해지면, 나중에는 물어보지도 않고 섣불리 상대방도 '나처럼 생각하겠지'하고 넘겨짚게 되어 갈등의 불씨를 지핀다. '매사 던져지는 질문'은 이러한 불상사를 사전에 차단하는 '과속방지턱'인 셈이다. 혹시라도 상대방이 매사 물어보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속단일 것이다. 거리낌 없이 매사 질문을 주고받는 사이는 진지하면서도 오래가는 관계일 것이다. 질문을 받는 상대방도 성심성의껏 대답을 솔직하게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슨 궁금증이든 질문하는 것을 꺼리지 말자. 또한, 질문을 받는 사람도 질문받는 일을 꺼리지 말자. 질문과 대답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순환되는 관계는 맑은 호수처럼 투명할 뿐만 아니라 끈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