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틀리지 않았다.
예전에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말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어른들께서 속된 말로 "다~ 때가 있다"라고 무심하게 내뱉으시는 말이 못마땅하게 여겨졌다. 때가 있다니, 무슨 운명론이라도 설파하듯이 때가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목표가 이루어지는 시기가 노력과 무관하다면, 노력하는 일은 극단적인 경우에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묘한 불쾌감을 일으키곤 했다. 만약 정말로 사람마다 '때'라는 것이 있다면, '목표가 이루어지는' 때가 오지 않는 사람은 좌절이란 늪에 빠져 노력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때가 있다'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까? 때라는 것은 즉, 그 사람의 '운'과 '선택'이 시의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운명론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내비쳤지만, '운명'과 '운'은 명백히 다르다. 운명은 거스를 수 없는 명령과 같은 것이지만 운은 언제 당할지 예측할 수 없는 장난 같은 것이다. 운은 무시할 수 없는 삶의 법칙이다.
그렇지만 때는 운만 있어서는 성큼 나의 앞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스스로를 기꺼이 내던진 선택이 있어야 비로소 '때가 오는' 것이다. 즉, '때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당장에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사실 운과 선택의 기묘한 조합에 의해 마주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직장에 입사할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뜬금없이 글을 남겨보겠다는 작은 결심에서 비롯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우연히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내가 남긴 글을 읽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운명 같은 만남'이란 허상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무엇보다 때가 온다는 말은 애당초 사람마다 중요하게 인식하는 시기가 다르기에, 결국 개인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해석도 달라질 것이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타인이 바라보는 때'와 '내가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때'가 다르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내가 원하는 때가 불현듯 찾아오게 될 때 서슴없이 붙잡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운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덕스러운 장난질이라면, 운을 붙잡으려고 하기보다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들이는 것이다. 운을 붙잡아 두려는 시도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내가 간절히 바라는 때가 엄청난 노력을 쏟는다 해도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온몸을 내던지지는 말자. 낚시꾼처럼 낚싯대를 적당히 움켜쥐며 때를 기다리고 있다가, 때가 올 것 같은 울림이 느껴질 때 힘차게 발돋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