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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만의 ‘공감’

각자 공감의 방식이 다르다.

by 문하현

하릴없이 일상적인 말을 내뱉다 보니, 문득 내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해 제대로 공감해 준 적이 있었는지 되물어보게 된다.


가장 일상적인 예로 우리는 좋지 않은 일을 겪고 나서 대화에 참여한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공감을 요구하곤 한다. 상대방이 이 요구에 반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지만, 종종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공감해주지 않을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는 시점은 바로 '기대를 강요하게 될 때'다.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공감의 방식'을 맞춰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공감은 기본적으로 소셜 에너지를 사용하는 일이다. 공감의 기저에는 경청이 있고, 상대방의 언어를 경청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소모되기에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사람은 모든 일에 하나하나 공감하기도 어렵다. 어떤 상황은 쉽게 마음에 와닿는 반면에 다른 상황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워 쉽사리 공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요구되는 공감의 내용도 시시각각 다르다. 설령 내가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듯이 말을 꺼내도 대화의 상대방에겐 공감받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도 있다. 이래서 제일 쉽고 명료하게 풀릴 것 같으면서도 한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가 아닐까 싶다. 매듭이 여러 방식으로 꼬이듯, 꼬인 매듭을 푸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MBTI붐이 한창 불타오르던 시절, T와 F유형에 대한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로 인해 “너 T발 C야?”라는 밈이 유행하곤 했었다. 감정에 공감하는 것을 요구하는 데 논리적인 사고로 반응하는 사람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한데 섞인 밈이다. 논리적으로 반응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냉정하다는 평가로 성급하게 귀결되어서는 안 되지만, 인터넷 밈은 으레 그렇듯 빠르게 전파되고 쉽게 잊히지 않는다. 사람은 항상 논리적이지도 않고, 항상 감정적일 수 없는데도 말이다. 반대로 논리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데 감정적인 언어로 반응하는 것은 공감이라고 할 수 있는가?


공감의 본질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감은 결국 '타인의 것을 내 것처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공감에는 “100%”라는 것이 없다. 완전히 같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상에 진입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타인이 내 말에 잘 공감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건 타인의 끈질긴 노력과 섬세한 이해가 수반된 결과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공감의 방식보다는 '공감하려는 의지'다. 타인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은 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에 스스럼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지가 없다면 애초에 공감은 일어나지 않는다. 감정적 공감을 요구할 때 논리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그 사람이 공감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반응조차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성격상 상당히 무뚝뚝하고 투박한 편이라 난항이 예상되지만, 그럼에도 타인과 공감의 파도를 함께 탈 수 있도록 노력해보려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을 깊이 이해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 공감은 '나'라는 좁은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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