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선택했으니 기회를 놓쳤다고 자책하지 마라.
'인생은 B와 D사이에 있는 C이다'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B는 탄생(Birth), D는 죽음(Death), C는 선택(Choice)이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아주 진득한 격언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A와 B 사이의 선택지를 고르는 것만 선택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선택에도 여러 유형이 있다. A와 B 중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 할 수 있고, 계속 망설이기만을 수십 번 반복하는 것도 이미 내가 '망설이기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선택은 결과를 낳는다. 어떠한 선택을 해서 그 결과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에 선택했다고 말하지만, 결과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선택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예컨대 배가 고프지 않아서 저녁을 먹을지 몇 번을 고민하는 일에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배고픔을 넘어선 굶주림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내 몸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저녁을 먹는다는 선택을 망설이는 사이에 의식하지 못한 결과가 발생한다.
이렇듯 선택이 필연적이기에 삶이 명멸하는 빛처럼 꺼지기 전까지 무한 선택의 굴레에 갇힐 수밖에 없는 동시에, 선택은 언제나 우리의 자유 아래서 무수히 일어난다. 무엇이든 간에 우리는 '선택했고', 그 결과를 어떤 식으로든 항상 감당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고 있음에도 그 기회를 붙잡는 일을 수십 번 망설이는 것조차 '선택한 것'이다. 망설임이 길어질수록 그에 따른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거나, 원하는 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는 이 부분을 손쉽게 간과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먼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근시안을 타고났기에, 망설임은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망설임이 길어지는 이유는, 그만큼 감당해야 할 리스크가 부담스럽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선택함으로써 얻을 결과와 리스크를 비교하는 일은 중요하다. 리스크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은 마구잡이식으로 내 몸을 던지는 일과 다름없으니까. 그러나 망설임이 길어져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 또한 선택의 일부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기회를 놓치는 것은 기회가 떠나는 게 아니라 '버리는 것을 선택'했다고 말해야 한다.
나는 속이 뒤틀린다고 느낄 정도로 뼈아픈 망설임을 반복하고 나서야 용감하게 선택을 단행한 적이 있지만, 결과는 내가 원하는 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쩐지 끈적하고 찜찜한 좌절에 발이 미끄러져 괴로워하기보다는, 밀려드는 후련함에 몸 둘 바를 몰라 뒤틀렸던 속이 나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없는 용기를 착즙기에 눌려 찌그러진 과일처럼 온몸에서 쥐어짠 나 스스로에게 은은한 만족감을 선사하기로 했다.
기회를 붙잡던 버리던, 언제나 선택은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있다. 무엇이든 당신이 하는 선택이 맞다. 어느 쪽이든 덜 후회할 것 같은 선택을 하자. 하지만 만약 기회가 주어졌을 때 붙잡지 않았다면, 계속 망설이기만 하고 끝내 행동하지 않았다면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기회는 당신의 손에서 '버려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