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맞춤형'이어야 한다.
"함부로 '충조평판'하지 마세요."
'충조평판'이라는 단어가 있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의 앞글자만 따서 만들었다. 대학생이던 시절 교수님께서 친히 알려주셨다. 알려주신 덕분에 마음속에 마치 좌우명처럼 아로새길 수 있었다.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저자의 책에서 유래된 단어였다. 참으로 간결하다. 간결하니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한 번씩 타인에게 칼날같이 날카로운 과오를 저지른 것만 같은 불안감이 뒤섞인 후회를 뒤로한 채, '충조평판 하지 말자'라고 끊임없이 다짐하게 된다.
충조평판은 '가치판단'의 층위에서 이루어진다. 내 가치관을 타인의 모든 것에 투사하는 것이다. 사실 사람인 이상, '충조평판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은연중에 '사실'과 '가치판단'이 복잡하게 얽혀버리기에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매번 의식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 계속 의식하려고 애쓰다가는 정신적 피로감이 몰려와 금세 지쳐 나가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충조평판에 얽매이게 되더라도, 내가 옳지 않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만약 틀렸다는 생각이 들면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태도를 허리춤에 매단 밧줄처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언제든 몸을 던지거나 잡아당길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때로는, 충조평판 중에서도 적극적으로 '충조(충고와 조언)'해야 할 경우가 있다. 바로 타인의 절실한 요구에 응할 때다. 타인이 요구하지 않았는데 '충조'를 게임 캐릭터의 액티브 스킬처럼 마구 남발하는 것은 조용한 손절로 이어지기 쉽다. 심하면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서 허황된 강요로 변질될 수 있다. 반대로 요구를 받게 된다면, 충조를 기꺼이 시전 하면 된다. 참 단순하지 않은가? 단, 여기에는 특정한 조건이 따라붙는다. 타인의 상황과 감정에 따라 '맞춤형 충조'인지 면밀히 따져보는 선행 절차가 있다.
만약 타인이 나에게 한 충고와 조언이 적절한 것처럼 여겨졌다면, 그만큼 나를 섬세하게 관찰하고 깊이 숙고한 덕분에 들을 수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진심 어린 충고와 조언이 주제넘은 오지랖이라고 치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값진 보물처럼 여겨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일이 아니기에 지나치면 그만인데도 '나의 일인 것처럼' 고려하고, 어떻게 이야기해야 선을 넘지 않는 것처럼 여길지 나름 열심히 고민했을 테니까. '맞춤형 충조' 뒤에 섬세하면서도 다정한 관심과 고려가 이루어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 나에게 적절한지 여부를 떠나 그의 노력에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게 된다.
그러니, 때로 마음껏 조언해 주는 것도 좋은 선택지일 수 있다. 타인이 기꺼이 받아들여줄 수만 있다면. 그리고 나 또한 타인에게 '맞춤형 충조'를 거리낌 없이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타인이 긍정적으로 내 충조를 받아들였다면, 그만큼 내가 그에게 세심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