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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하자.

'나'에게만 갇혀있으면 성장할 수 없다.

by 문하현

특수한 안경이 있다. 안경은 안경인데 양옆에 가림막이 있어 앞만 바라볼 수 있고 옆은 쳐다볼 수 없다. 경주마에게 씌우는 안대 같은 안경을 보니, 불현듯 '나'에 대해서만 전념했던 시기를 되짚어보게 된다.


사실, 누구에게나 이런 시기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처음부터 나 이외의 대상에 사려 깊은 관심을 갖기란 어렵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단계의 아이들을 생각해 보자. 이 시기의 아이들은 발달 단계상 자기 자신에 대한 자아상이 한창 성장하는 중이다. 낮은 연령대의 아이들이 자기 자신한테만 관심을 갖고 자기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이의 시기를 벗어난 인간이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한창 골몰하고 외부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경우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기 자신에만 관심을 집중하게 되면 자아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좋지 않은 방향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전혀 해롭지 않을 것 같은 '자기반성'도 과하면 되레 역효과가 나기 쉽다. 철저히 자기 자신만을 향한 피나는 반성은 가상의 상대가 없는 쉐도우복싱과 같다. 그저 몸과 마음을 혹사시키는 일에 그치게 되고 얻을 수 있는 결과도 변변찮다. '나'라는 자아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나 이외의 대상에 의해 구성된다. 즉 나와 나 이외의 대상과의 관계 위에서 이루어지는 반성이 자아상을 정확하게 반영함에 따라 훨씬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나 이외의 대상'이라는 것은 특정한 물체나 사건, 타인 등 외부에서 나타나는 모든 것이 된다. '반면교사'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나'의 중요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서 있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다만, 앞만 보고 내달리며 땅을 무참히 밟아대 황폐화된 흔적을 선명히 남기는 경주마처럼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굳이 말에 비유하지 않더라도, 한 번 찍힌 상흔을 예전의 상태로 돌아오게 만드는 데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든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한때 책더미에 묻혀 살았던 어린 시절의 나만 해도, 대결 상대가 없는 쉐도우복싱에 온몸을 불사 지른 셈이다. 책의 주제를 뛰어넘는 '나에 대한 자기반성'은 지금에서야 크게 의미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나'는 분명히 가장 중요하지만, 그럼에도 '나'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나와 친해지라는 말은 나와의 거리가 아득히 멀었을 때나 통하는 조언이다. 오히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사람은 '나'에게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순간이 필요하다.


삶은 양팔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반대편 저울의 무게추를 살펴보며 '나'를 너무 무겁거나 가볍게 만들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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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