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끝까지 기다려줄 수 있을까?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족과 주말을 보냈다. 볼일을 보러 외출하던 차에, 문득 전부터 가고 싶었던 디저트 가게가 가까이 있다는 게 생각나 같이 가달라고 부모님께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차를 가게 쪽으로 돌리셨다.
생각보다 너무 달았지만 비싼 값을 치른 탓에 꾸역꾸역 나눠먹었다. 가게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불현듯 언제나 누군가는 나를 줄곧 기다려주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니 마음 한편이 짓눌리다 못해 쪼그라드는 기분이 들었다. 기다리는 일은 시간을 소비한다. 짧든 길든 간에, 누군가에게는 소중했을 시간을 무자비한 상어처럼 먹어치우는 것이다. 나는 내 시간을 불태워 누군가를 진득이 기다려줬는가, 하는 부끄러움이 고개를 들어 나를 째려보는 것만 같았다.
기다림에도 유형이 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다림이 있고, 확신을 요구하는 기다림도 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기한 없는 기다림'은 인내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기에, 얼마든지 기다려도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확신을 요구하는 기다림은 인내와 더불어 신뢰가 요구된다. 이러한 기다림은 '마음의 유효기간'에 따라 끝맺음도 달라질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확신받지 못한 채 기다림에 지쳐 나가떨어져서는, 쓸쓸한 끝을 맞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신뢰를 쌓아가면 갈수록, 마음의 유효기간은 조금씩 늘어날 수 있다. 어느 순간 '기간의 만료일'이 사라져서는 끝까지 기다리고 싶어 질지 모른다. 기다림은 그네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는 심하게 흔들거리는 그네에 올라탄 나머지 금세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것이다. 그러나 차츰 그네가 땅과 나란히 수평선을 맞추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마음은 잔물결처럼 평온해져서는 계속 타도 괜찮을 것처럼 느낀다.
기다림의 결실은 결국 얼마만큼 신뢰를 주고받느냐에 달렸다. 기다린 만큼의 시간은 기다림의 대상에게 귀속된다. 신뢰로 쌓아 만들어진 힘이 완전히 꺼져갈 때까지 기다렸음에도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했다면, 귀속된 시간은 손가락 사이에서 힘없이 흩어져버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고운 모래와 같아져버리고 만다. 귀속되어 버린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건질 수가 없다. 그렇기에 기다림은, 어떻게 보면 나를 기꺼이 던지는 도박수에 가깝다.
분명히 누군가는 나를 기다리고 있거나, 기다렸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가벼운 바람 한 번에 덜덜 떨리다 못해 끊어질 듯한 그네 위에서 휘청거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네를 붙잡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상대방의 선택이지만, 그렇다 해도 나를 향한 것이라면 결코 가벼이 넘길 수가 없다. 상대방의 시간을 파렴치하게 약탈한 것만 같아 마음이 크게 무거워진다.
언제나 기다림은 있었다. 나도 그에 부응해서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