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는 SF나 추리소설에 푹 빠져있곤 했다. 지금은 소설이 질려서 사회학이 곁들여진 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난도가 제법 있는 책이다 보니 어려우면서도,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받으니(?) 나름 쏠쏠한 재미를 즐기는 중이다.
이러한 책들은 오랜 시간 학문을 치열하게 탐구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묻어나, 독자 또한 비판적 관점에 함께하도록 이끌어준다. 그러나 책의 근본적인 목적이 '읽히는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 일단 내용만 살펴보더라도, 일반 대중에게 있어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는 점들이 많다. 난해함을 완화하기 위해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노력하는 저자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내용은 둘째치고 문장들도 한눈에 들어오지 못하는 데다가 어딘가 많이 꼬여있다. '아무나 읽을 수 없으니 포기하라는' 음흉한 의도를 감추고 있는 것도 아닐진대, 마치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들을 무수히 깔아놓은 것만 같다.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면 읽을 수가 없다. 독자는 철옹성 같은 난해함으로 가득한 책에 기겁한 나머지 쉽게 읽히는 책만 손에 잡거나, 아니면 아예 방구석에 처박아 암묵적으로 '금서'로 만들어버린다.
물론, 내용을 이해하려는 독자의 노력은 필요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손 한번 까딱하지 않고 밥을 먹으려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눈은 뚫어지게 책을 파헤치고 있어도 머릿속에 '본인만의 언어로 입력시키는 과정'이 없다면 패션독서에 불과할 뿐이다. 적어도 예전에는 이러한 행태가 부정적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마치 울퉁불퉁한 우박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정보들을 올바르게 소화하기도 벅찬 시대에, 길고 난해한 텍스트는 점점 외면당해 소수만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중은 유튜브 쇼츠처럼 빠르게 소비되는 콘텐츠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AI가 내용을 완벽하게 요약해 주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텍스트를 진득하게 붙잡으려는 독자도 책을 가뿐히 던져버리고 AI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텍스트들은 한 번도 읽히지 못한 채 '요약을 당하게 될 것'이다.
책, 아니면 텍스트가 본래의 가치를 간직한 채 살아남으려면 가능한 널리 읽혀야 한다. 내가 어려운 주제는 처음부터 철저히 배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자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어야 쉽게 읽히기 때문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최소 하루 내지 이틀의 시간을 들여 꼼꼼히 검토해서 내보내지만, 독자는 단 몇 분 안에 게눈 감추듯 읽어 치우고 파쇄기에 갈려나가는 종잇장처럼 머릿속에서 깨끗이 날려버릴 것이다. 읽히지 않으면 저자의 뜻깊은 노력은 무의미해진다.
그래서 나는 독자가 단숨에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글쓰기를 지향한다. 혹시라도 중복된 문장이 있다거나, 난해하게 여겨질 것 같은 부분이 있는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검토해 본다. 정말로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간결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면 게시하는 편이다.
거대한 흐름을 거스르기 어렵다면, 차라리 편승해서 쾌속으로 나아가는 것이 낫다. 저는 끝까지 쓸 테니, 혹시라도 읽게 되신다면 단숨에 읽어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