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개방은 '피드포워드'로 이어진다.
지금에서야 가벼이 웃어넘길 일이지만, 나는 여느 또래들이 쉽게 접하지 않는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사람들이 드라마나 영화, 여행, 취미 이야기에 집중하며 재잘대면, 분명히 대화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그 사이에 자연스레 스며들기가 어려웠다.
'비주류'는 무미건조한 단어를 뛰어넘는, 상당히 애절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주류에서 벗어난 것들은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으면 공유되기가 힘들다. 나는 대부분의 그룹에서 '비주류'였던 셈이다. 일단 '비주류'에 속하는 관심사들에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특정한 드라마나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때, 인문학이나 문학, 심리학 같이 '인간과 세상에 대해 탐구하는' 매체에 탐독하던 편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기 개방을 어렵게 만들었다. 대화의 파동을 가장 손쉽게 맞추는 방법은 바로 공통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공통점이 있으면 약하게나마 자연스러운 호감을 느끼게 되니까. 머릿속이 '비주류'라는 카테고리의 대표 격인 나로서는 엇비슷한 파동을 발산하는 것부터 상당히 애를 먹은 나머지 점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일을 주저하게 되었다.
운 좋게 취업하고 나서 단조롭고 딱딱하기 그지없는 텍스트가 아닌 생생하고 다채로운 삶의 현장에 진입하고 나니, '비주류'는 그 자체로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결국 '비주류'라고 지칭하는 것도 애당초 상대적인 것인 데다, 사실 삶이란 복잡다단한 퍼즐조각을 맞춰가는 일에 있어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의 '비주류'적인 특성을 감사하게도 좋게 평가하거나, '비주류'가 '주류'에서 발견되는 약점을 보완해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항상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 용을 써서 나사를 끝까지 박아도 사이사이에 홈이 보이듯,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질 수 없다. 어긋나 있다고 해서 나를 드러내는 일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공통점이 많으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수월하겠지만, 공통점이라고 여겼던 점들도 어느 순간 언제 똑같았는지도 회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좀 더 유연하면서도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되려면, 그리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맺고자 할 때는 나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가끔은, 목젖까지 차오른 두려움을 삼켜 없애서 나를 드러내보기로 했다. SNS와 브런치스토리를 시작한 이유는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드러내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