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는 피할 수 없다.
가끔씩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잘못이 스노볼처럼 구르고 굴러 무방비한 등을 후려치는 경우가 있다. 아차, 싶으면서도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으니 금세 후회에 젖어 침울해지기도 한다. 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해 생기는 결과가 찜찜하게 여겨지는 나머지 어둡고 길쭉한 그림자 같은 후회의 꼬리를 끊어내기 어렵다.
일단 한 번 후회에 잠기게 되면, 후회가 마치 빨대를 꽂아 활기만 쏙 빼먹는 모기같이 몸에 끈질기게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 상당한 감정을 소모하는 일이기에 후회에 대해 본능적으로 회피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일이든 후회하지 않으려, 후회로부터 허겁지겁 도망치기 위해 악력기를 힘을 다해 쥐어잡듯 온정신을 옥죄게 된다.
사실, 후회하지 않을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반사실적 사고를 통한 반추, 즉 상상 속에서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미련은 언제나 남을 것이다. 내가 처한 입장에서 보는 또 다른 상황은 지금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라고 여기지 않던가? 후회는 어떻게 보면 본능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결과를 쟁취하고자 달려 나가려는 목표 지향성은 우리의 삶을 아무도 모르게 지배하고 있다. 다시 말해 후회는 필연적이면서 필사적인 반추에서 비롯된다.
후회는 일상적인 감정이다. 작던 크던 모든 일에 대해 후회는 취약해지는 순간을 노리는 추격꾼처럼 뒤쫓아온다. 우리는 이 추격을 따돌릴 수 없다. 그렇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는 있다.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하고 안도하는 순간 가까이 다가온다면, 또다시 앞질러버리면 그만이다.
추격을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좋게 후회하자.' 좋게 후회한다는 말의 의미는 '후회하며 성장하자'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후회는 사건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 예컨대 한탄으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많다. '이러지 말았어야 했는데'로, 헛된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만 하고 그다음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반면 '좋은 후회'는 반성이 내재된 감정과 생각의 총체다. 후회를 통해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또는 노력할 마음이 생긴다면 그 후회는 '좋은 후회'에 속한다.
그러니 비록 마음이 편치 않더라도 후회를 구겨진 종이조각처럼 쉽게 버리지 말자. 구겨서 휙 버리기 전에 한 번은 찬찬히 살펴보자. 그러고 나서 미련 없이 태워서 훨훨 날려 보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