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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Jun 10. 2018

"거울에다 지껄여봐 너는 대체 누구니"

나도 내가 누구였는지도 잘 모르게 됐어
거울에다 지껄여봐 너는 대체 누구니


방탄소년단의 노래 "Fake Love"의 몇 소절이다. 안무에서는 멤버 제이홉과 정국 군이 마주 보고 서로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거울 밖에 서 있는 나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다.



출처 - http://picbear.online/media/1792966241888239754_6263802397


분명 나인데, 낯설다. 낯선 나에게 지껄이듯 묻는다.

"너는 대체 누구니"


거울 속의 내가 똑같은 포즈로 답한다.    

"난 네가 만든 너야. 너는 화를 낼 자격이 없어. 난 바로 너라고."  


Fake Love를 하는 Fake Self.

가짜 사랑을 하기 위해 만든 가짜 나.

그런 나 자신을 향한 지껄임.

'모르겠다. 너는 대체 누구인 거니..'    




노래를 듣는데 '지껄이다'라는 단어가 유독 크게 들렸다. 필요에 따라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있는 가짜 모습과 실제 자신의 모습의 차이로 고민하던 이들이 떠올랐다.   


어릴 때 부모님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사랑 대신 받은 건 구박과 욕이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고, 얼마나 부족하고 한심하면 부모님조차 나를 좋아해 주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며 자랐다.

그래서일까. 20대 중반이 된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다가서질 못한다. 상대방이 나를 싫어할 것만 같아 겁이 난다. 상처받기 싫어서 내가 아닌 다른 모습을 만들었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멋지고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고 그 사람인 척 살고 있다....

나는 완전 가짜다. 허세다. 그러니 누가 나를 좋아해도 관계가 오래 가면 안 된다. 그 사람은 내가 만들어 놓은 가짜 나를 좋아하는 거다. 알아차리기 전에 헤어져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험하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너 그렇게 가짜로 살지 마라. 내가 너를 좀 아는데, 너는 원래 그대로가 좋아. 그냥 너로 살아. 자꾸 이상하게 변하지 말고."


불편한 마음에 못 들은 척 다른 얘기를 했지만, 내내 마음에 걸렸다. 집으로 돌아와 거울 앞에 서서 나를 바라봤다. 거울 속 내 눈빛이 멍하다.


나 자신이 싫다. 멍하니 짓고 있는 표정도 싫다. 화가 났다. 양 뺨을 번갈아가며 아주 세게 여러 번 때렸다. 거울 속에 나에게 맞은 내가 또 멍하니 서 있다. 지치고 피곤하다. 

- 나를 모르는 나에게, 160-161쪽




"거울에다 지껄여봐 너는 대체 누구니"

긴 노래 중 왜 이 부분이 귀에 쏙 들어왔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아마, 나 역시 거울 속 나에게 중얼중얼 지껄인 경험이 있어서였던 듯싶다.  


*****

30대 초반을 넘어서며, 나의 낯가림과 내성적인 성격이 걱정되고 싫었던 적이 있다. 누구와도 금방 편하게 말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학교 다닐 때는 몇몇 친한 친구들과만 잘 지내면 괜찮았는데, 졸업 후 사회생활은 좀 달랐다. 당시 내가 하던 인사 컨설팅 일은 회사 내부 동료든 외부 클라이언트든 많은 사람을 대해야 했기에 아무래도 밝고 외향적인 성격, 두루두루 잘 지내는 성격이 강점인 듯 보였다.

'나도 좀 더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억지 모습, 가짜 모습을 만들었다. 사람들 앞에서 밝은 척, 외향적인 척, 즐거운 척. 혼자 있고 싶어도 사람들을 보면 먼저 다가가 큰 소리로 인사했고, 모임을 만들고, 모임에 참여해서 크게 웃고 떠들고 했다. 술도 한 잔 못하면서 자리를 지켰다.


당연히, 편하지 않았다. 즐겁지 않았다. 모임에 가면 내내 불편해서 자꾸 시계를 봤다. 그래도 한동안 그렇게 지냈다. 내 딴에는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노력이라고, 그래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어느 날, 모임 중간에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던 중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쳤다. 거울에 비친 나는 피곤해 보였다. 지쳐 보였다. 그런 나를 향한 지껄임이 튀어나왔다.   


너 지금 뭐 하냐
이거 너 아니잖아..


나는 대답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서있었다. 조금 후 거울 속 나를 피해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열심히 씻었다. 내 안에서 지껄이는 소리가 또 들렸다.


그럼 어쩌라고.
잘해보려고 이러는 거잖아.


화가 났다. 손을 더 세게 씻었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 웃고 재밌는 척 떠들었다. 그날 시계는 더 느리게 움직였다.  




이후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거울을 보면서도 나를 보지 않는 것. 정확히 말하면.. 나는 거울 속 나와 눈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의도적으로 거울 속 내 눈과 눈동자를 바라보지 않았다. 거울 앞에 서면 기계적으로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서둘러 뒤돌았다.  


아마 겁이 났던 것 같다.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면 너 누구냐고, 뭐하냐고, 왜 그렇게 가짜로 사느냐고 하는 지껄임이 또 나올까 봐 싫었다. '답도 없고 다른 방법도 없는데 뭐 어쩌라고. 제발 물어보지 않기를... ' 하는 바람으로 발생 가능한 상황을 막아버리는 선제공격. 다른 말로 표현하면 회피.    


시간이 지나도 좋아진 것은 없었다. 무엇보다 업무 집중력이 점점 떨어졌다. 회사에 나가도, 사람들을 만나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바랐던 것처럼 인간관계가 좋아지고 넓어지지도 않았다.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눈치만 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많지도 않은 에너지를 내가 해내야 하는 업무가 아닌 거짓 모습을 만드는 데 다 써버리고는 매일 지쳤다. 점점 예민해지고 별 것도 아닌 일에 짜증도 자주 냈다. 회사에서는 그럴 수 없으니 집에서. 안전한 식구들에게. 일도 가족관계도 다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진짜 내가 아니라 가짜 나로 살고 있구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을 훨씬 넘어섰구나.


내가 싫고, 그렇게 애를 써도 잘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원망하고 싫어하면서 마음이 꽁꽁 얼어갈 때쯤 든 생각이었다. 너무 힘이 들었다. 그만 힘들고 싶었다. 좀 편해지고 자연스러워지고 싶었다.


이제 그만하자
잘하지도 못하는 거 그만 하고, 나답게 잘할 수 있는 거에 집중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며 방향을 바꾸었다.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성격이지만, 그런 나에게도 있을 좋은 점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가진 좋은 점, 안 좋은 점을 모두 이해하고 인정했다.


억지 모습을 버렸다. 내 진짜 모습으로 사람들을 대할 때 예의를 지키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며 무엇보다 서두르려 하지 않았다. 목소리가 큰 사람들 사이에서 내 목소리가 가려져도, 남들보다 친한 사람이 조금 적어도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단, 일도 사람도 성실히 진실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내 모습을 지키려 했고, 내 속도를 존중해줬다. 그러고 나니 상황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가능했다. 가끔은 꽤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거울 앞에 서서 내 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을 향해 너 대체 누구냐고, 지금 뭐하느냐고, 그래서 좋으냐고, 잘되고 있는 것 같으냐고 지껄이지 않는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 강의를 시작하기 전 잔뜩 긴장한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며 '어쩌려고 그래. 빨리 긴장 풀어!'라고 되지도 않는 말을 하지도 않는다. 그저 숨 한 번 크게 쉬고 내 할 일을 한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면 내내 잔뜩 긴장했던,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내 모습을 보며 말해준다.


애썼다.
잘했어.
잠깐 쉬자.


지금은, 이전보다 많이 편하다. 친한 사이는 여전히 많지 않지만 아쉽지 않다. 그들과의 관계가 꽤 단단하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가 바라는 건,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맞는 좋은 사람과의 따뜻한 관계다. '살다 보면, 때가 되면 조금 더 깊어지고 넓어지겠지' 하고 생각한다. 일을 대하는 자세도 같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첫 째, 무엇보다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것과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쓸데없이 고집을 피우고 버티지 않았다. "그래, 잘못은 여기까지."

둘째,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해주었다. 나는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었고, 일도 잘하고 싶었다.

셋째, 장점과 단점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줬다. 나에게 이런 좋은 점이 있고, 이런 점은 아쉽구나, 고쳐야겠구나를 솔직히 정리했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모두 있는 나를 수용했다.

넷째, '만들어 낸 가짜 나'가 아닌 내가 가진 것으로, 진실되고 편안한 모습으로 내가 바라는 것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다섯째, 열심히 하되, 조바심을 내거나 재촉하지는 않으려 했다. 우리 모두 각자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내 속도로 오래, 잘가면 된다.  


이 다섯 가지는 나 자신에게도 여전히, 나와 심리학 수업을 함께 하는 학생들에게도, 상담과 코칭을 통해 만나는 이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내용이다. 사람은 가짜 자신(Fake Self)이 아니라 진실된 나 자신(True Self)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편안하다. 인생을 가장 잘 살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물론,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Actual Self)과 나 자신의 진실된 모습이 다 같을 수는 없다. 늘, 완전히 일치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진짜 모습을 내버려 둔 채 상황과 필요에 맞추어 온통 가짜 모습이 되어 사는 것은 하지 말자. '가짜 나'로 살아가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삶이 많이 슬퍼지고 허무해진다. 그러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지껄이게 되는 것이다. "나도 내가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 너는 대체 누구냐..." 우리가 거울 속 나를 바라보며 해주어야 할 말은 화나고 못마땅한  , 혹은 혼란스러운 눈으로 내뱉는 지껄임이 아닌 따뜻한 시선을 담아 건네는 위로와 응원이다.


애썼어.
잘하고 있어.
다음에는 더 잘해보자.
좀 쉬어.

   

모쪼록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 '가짜 나(Fake Self)'로 흔들리며 아프게 지내지 말고, 사람들 앞에서 연극하느라 지쳐버리지 말고, 진실된 모자신에게 맞는 속도로 건강하게 꾸준히 나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일이든, 사람이든, 사랑이든, 모두. 





* 본 글과 관련해 함께 읽어보면 좋은 글 - "True Self & Actual Self'

https://brunch.co.kr/@hai-psychology/30




* mail - grace@hainstitut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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