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진 Oct 19. 2019

청춘의 불안

항상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입니다. 눈 앞이 깜깜한 길을 혼자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섭습니다.


불쑥불쑥 눈물이 올라오고 가슴 언저리가 답답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 방에 있을 때면 자주 울곤 합니다.


며칠 전 사람 많은 버스 안에서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당황스럽고 창피해서 도망치듯 내렸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그냥 앉아있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나만 빼고 다들 잘 사는 것 같더라고요..


나 자신을 잡아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느낌...


청춘들이 다가와 건넨 속마음입니다.

겉으로는 전혀 우울하거나 불안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이들이기에 많이 놀랐습니다.

 



지난 학기 초, 학생들에게 자기소개서 과제를 내주며 물었습니다.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정서는 무엇인가요? 이유는?"


여러 학기 동안 심리학 수업을 해왔지만, 학생들에게 처음 내준 항목이었습니다. 감정의 종류에 대해 설명하고 자신의 주된 감정을 이해할 것을 권했던 것에 더해 이제는 학생들이 좀 더 차분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해내야 할 프로젝트, 준비해야 할 스펙을 위해 바쁘게 달리지만 말고, 마음속 큰 감정을 알아주고 그 감정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보고서를 쓰며 저에게 편지를 쓰듯 솔직하게 적습니다.


"저는 요즘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듯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난 말이야... "


그런데 내용이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다양한 감정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했지만, 읽으면서 깨닫게 된 점은 '밝아 보이는 표정 속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이렇게나 크게 가지고 있구나..' 하는 것입니다.


물론 '행복하다', '설렌다' 등의 긍정 정서를 적은 이들도 있습니다. 1학년, 간혹 2학년입니다. 그 외 많은 청춘들은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더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적은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해보 긍정 정서에 비해 부정정서가 무려 3배나 더 많았습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요즘 가장 크게 느끼는 정서는 무엇인가요? 이유는?"


부정정서의 비율이 훨씬 큰 것이 지난 학기 학생들의 특성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심 그러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시원섭섭하다'거나 '그저 그렇다'  혹은 답을 하지 않은 학생이 있다는 점은 달랐지만, 긍정정서에 비해 부정정서가 주된 마음이라고 답한 학생들이 여전히 훨씬 더 많았습니다.


지난 1년 간 학생들이 답한 주된 정서를 정리하고 그래프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정서 비율_대학생 156명>


부정정서가 3배나 더 많습니다.

조금 더 들여다보겠습니다. 20대 청춘들 마음에 담긴 부정정서는 무엇이었을까요?  피곤, 외로움, 공허, 조바심 등이었습니다. 이외에 압도적으로 많이 등장하는 부정적 감정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불안입니다.  

많은 청춘들이 걱정이 된다고, 섭다고 답했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는데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열심히 하면 잘되려나, 아무 소용도 없는 건 아닌가 싶어 겁이 난다고 합니다. 물론 제가 우리나라의 청춘 모두를 만나본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요즘 상황을 보면 20대 모두, 30대까지 폭넓게 조사해 보더라도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점점 날카롭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사람들, 해결해야 하는 경제적 문제, 남보다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으니 나에게 기회를 달라고 설득하며 뚫고 나가야 하는 세상, 노력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지만, 하지만 계속 감당해내야만 하는 삶을 생각하 막막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뒤처질까봐, 남보다 잘하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고, 그 마음이 계속되면서 점점 작은 일에도 부들부들 떨리고 겁이 납니다. 속으로는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안 그런 척, 괜찮은 척 버텨냅니다. 해야 할 것은 왜 또 그렇게 많은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왜 또 그리 많은지.. 그 상태에서 버티다가 기운을 다 써버려 우울해지고 무기력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소위 "한 불안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불안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고 지치게 하는지 정말 잘 압니다. 저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청춘들의 모습을 보며, 불안감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상황을 보며 제가 마음을 다잡곤 할 때 사용하는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불안해하는 자신을 미워하지 마세요.

- 태어나면서부터 남들보다 예민하고 많이 떨고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들 앞에만 서면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붙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격입니다. 다른 사람은 2나 3정도의 불안감을 느낄 때 5나 7 혹은 그 이상의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안 좋은 상황과 경험이 쌓이면 불안감은 더 커집니다. 원래 예민하고 불안한 성격인 사람이 계속 버겁고 힘든 상황에 있다보니 불안감이 몇 배로 더 커지는 것입니다.   


간혹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 중 그런 자신을 "못났다"거나 "한심하다"고 평가하고 "이런 내가 싫다"며 미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격을 능력으로 평가하고 자신을 구박하는 것이지요. 이거 너무 매정합니다. 안 그래도 주변에 야박하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득한데, 나마저 나에게 그렇게 하면 너무 슬퍼집니다. 기가 죽습니다.


억울하겠지만, 그냥 받아들이세요.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이 불안해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이지요. 불안해하는 자신을 자책하고 원망한다고해서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불안하지 않은 척하지 마세요. 억지로 감정을 누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괜찮다고 하지 말고 그냥 인정하고 말하세요. "나 사실 많이 불안해", "걱정이 되고 두려워." 이렇게 말이지요.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하며 억지 주문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 또 불안하구나. 언제는 안 그랬나 뭐..."

그리고 불안해하지 않겠다는 결심,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소용이 없더군요. 마음에 들지 않는 성격이지만,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합니다.



2) 잘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주세요. 

- 어떤 일을 앞에 놓고 왜 더 불안해질까요? 물론 타고난 성격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잘하고 싶은데 안 될까봐, 발표도 잘하고 싶은데 도중에 실수하면 어쩌나 싶어서, 뒤쳐지면 어쩌나 싶어서 불안한 겁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때는 불안하지 않습니다. 대충살고 말자는 생각이 들때, 실패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은 불안한 마음으로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걱정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그런 것입니다. 그 마음을 알아주세요. 그리고 기특한 마음을 가진 자신을 도와주세요.



3) 최근 내가 한 행동을 정리해보세요.

- 솔직하게,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해보세요.


"요즘 주로 하는 행동들을 모으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까?" 


"이불 밖은 위험하다"고 하며 안전한 곳에서 꼼짝 않고 있는지, 다치고 상하더라도 집 밖으로 나가고 있는지를 돌아보세요. 혹 불안하다고 하면서 유투브와 인스타그램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보고 있는 건 아닌가요? 같은 시간에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무언가 더 좋은 것을 해보면 어떨까요?


어떤 사람은 불안을 핑계로 무언가를,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구경하고 부러워만 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격려하며 앞으로 나갑니다. 손도 마음도 덜덜 떨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시도해보고 정성껏 하는 것이지요.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앞으로는 더 나은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행동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씩 움직여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한 학생이 다른 학우들 앞에서 발표를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습니다. 앞에 나와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발표입니다. 제가 원래 이런 거 못하는데요, 더 미루고 도망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렇게 나왔습니다. 너무 떨려서 며칠 동안 잠도 잘 못잤습니다. 발표를 시작하려고 하니 심장이 목에서도 막 뛰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온 몸이 쾅쾅 울립니다. 하지만 해보겠습니다."


이 학생은 그날 이불 밖으로 나왔습니다. 불안한 마음을 존중하며(?) 안전한 곳에 머물려는 사람과, 불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돕고 성장시키는 행동을 하는 사람의 차이가 맺는 결과는 지날수록 커집니다. 마음만으로 되는 것은 없습니다.   


4) 에너지를 다 쓰고 지쳐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

- 바쁘게, 많이 일하는 것만이 열심히 사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때로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잘 먹, 잘 자고, 잘 쉬어야 합니다. 숨도 좀 천천히 쉬면서 미소도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너무 몰아세운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 에니지가 바닥이면 슬프고 우울하고 불안합니다.


5) 도움을 받으세요.

- 무서운데 혼자 버티지 마세요. 만일 불안감이  실생활을 방해할 만큼 강하고, 이런 상황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든, 전문가를 찾아가 상담과 코칭을 받든 꼭 도움을 받으세요. 열심히 살다가 지친 나를 내가 도와주는 것입니다. 센 척할 필요도, 괜찮은 척할 필요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생은 원래 녹록지 않습니다.

소수를 제외하면 사는 건 참 어렵고 힘이 듭니다. 어쩌다 잠깐, 어쩌다 좋은 날 잠시 행복하기도 하지만, 긴장, 실망, 허탈, 괴로움, 불안 등을 꽤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 우리네 삶인 것 같습니다. 굳이 그렇지 않다고, 사는 건 참 좋은 거라고 억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성격이든, 상황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을 위해 움직이세요. 괜히 기죽지 말고.  


제가 청춘들에게 강조하는 말입니다.


이 글을 시작하며 쓴 사례 중 하나, 불안하고 답답한 마음에 길 위에서 울어버렸다고 한 학생도 자신을 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은 열심히 하루하루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정리해보면서 저란 사람에 대해, 제가 가진 것에 대해, 그리고 제 꿈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고 상상하고, 움직여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한동안 불안정했던 정서가 점차 안정되는 느낌에 감사함을 느끼고 또 즐거움도 느낍니다.


불안한 청춘, 당신에게도 이런 변화가 생기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변화의 시작에 이 글이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돌에게 권하는 자기 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