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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하와이!?

by 명랑소녀





몇 차례 공연을 한 훌라 2년 차 가을이었다. 서귀포 바닷가에서 공연일정이 잡혔다. 우리집은 제주 북동쪽 중산간이다. 공연장인 서귀포 중문 색달 해변까지 1시간 20분이 걸린다. 제주에서의 이동시간은 도심에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거나, 쭉 뻗은 길로 가더라도 한라산을 넘어가야하니. 수원에서 강북 어딘가를 갈 때 걸리는 1시간 20분과는 피로도 차이가 꽤 크다.


새벽같이 챙기고 나섰다. 일찌감치 모여야 분장을 하고, 초저녁 공연을 할 수 있다. 공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가족들은 으레 엄마는 공연하러 가는구나 하고 심심한 반응을 보이며 저들끼리 무얼 할지 고민했다. 오늘도 부캐로 자유롭게 훌라를 누려보자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강사님의 서귀포 스튜디오에 모두 모여 서로에게 속눈썹을 붙여주고 화장을 봐주고, 머리를 올려주었다. 의상을 차려입고 짧게 리허설을 한 후에 공연장소로 이동했다. 오늘은 훌라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하와이 문화 체험까지 준비를 했다.


훌라 파우와 무무드레스도 여러벌 준비하고, 아이들을 위한 레이만들기 프로그램도 마련이 되었다. 파우는 우리가 월남치마라고도 부르는 훌라용 주름치마를 말한다. 파우는 일상 생활에서는 입지 않고, 훌라 할 때만 입고 평소에는 소중하게 관리한다고 한다. 무무드레스는 하와이에 이주한 선교사들이 하와이 원주민들의 헐벗은? 의상을 대신하게 하려고 제작, 보급한 것에서 시작된, 활동하기 편하면서도 통기성이 좋아 시원한 롱 원피스이다.


날씨는 화창하고 바람은 선선해서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바다에는 오래전부터 자리잡고 튼실하게 자라고 있는 야자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다. 대기실로 마련된 텐트가 바람에 날리며 이리저리 흔들린다. 나를 포함한 수십명의 훌라댄서들이 분주하게 의상을 갈아입으며 공연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공연 직전 마지막으로 맞춰보자고 인적이 뜸한 야외 한 켠에서 리허설도 했다.


다양한 스토리와 템포의 훌라 공연이 이어졌다. 구경하느라 바쁘다가 내 차례가 되어 부리나케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올랐다. 핑크빛이 서쪽 하늘을 조금씩 물들이기 시작하는 무대에 올라 그 동안 갈고닦은 솜씨를 선보였다. 한 곡 한 곡 공연이 이어지는 동안 노을은 점점 진해져 진한 오렌지빛이 되었다. 나를 비롯해 공연을 보는 이들은 연신 사진을 찍었다. 나도 공연을 마치고 동기들과 함께 노을진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예쁘게 화장하고 차려입었으니 사진을 많이 남기고 싶었다.


공연을 마치고 다음 수업시간에 한 분이 말했다. 이날 찍은 사진을 본 지인이 언제 하와이에 다녀왔냐고 물었다고. 모두가 다시 한 번 유심히 사진을 들여다본다. 이 사진들을 보여주며 하와이 가서 훌라 체험 하고 왔다고 말하면 안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고. 나는 하와이를 가보지 않았으니 속으로는 아리송했지만, “그럼, 하와이까지 갈 필요가 없네요!”라며 같이 즐거워했다.


마음 속으로는 말했다. “그래도 꼭 가보고 싶다. 하와이. 하와이에서 훌라을 추고 싶다. 노을지는 하와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그러고나면, 서귀포에서 공연하면서 진짜 하와이랑 똑같다고, 하와이 갈 필요 없겠다고 신나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와이를 추억하면서 제주를 만끽할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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