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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아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by 명랑소녀

하와이어로 모아나는 큰 바다를 말한다. 앞바다, 해변은 카이라고 한다. 하와이는 하와이카이, 라니카이 등 카이가 많다. 훌라를 하면서 신혼여행으로 갔던 보라카이의 카이가 바다를 뜻한다는 걸 알게 됐다. 훌라 동작도 카이와 모아나는 다르다. 작은 파도처럼 카이를 표현하고, 두 손을 멀리 뻗어내서 큰 파도를 만들어 모아나를 표현한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내 고향은 경남 통영의 작은 섬 욕지도이다. 어릴 적 사진을 앨범에서 꺼내볼 때면 욕지도가 이랬구나. 나의 꼬꼬마 시절이 어땠는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방송에도 나온 적이 있어서인지 사람들의 인지도가 꽤 있는 편이지만, 나의 학창시절엔 욕지도라고 하면 장난치는 건줄 아는 사람도 곧잘 있었다. 욕을 잘하는 섬이냐고 농을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섬에서 나서 그런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는 섬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제일 큰 섬은 호주다. 섬이라고 하기엔 너무 커서 대륙이라고 불러야할 것 같지만. 20대에 잠시 머물렀던 호주를 참 좋아했다. 호주의 작은 섬 그레이트 케펠 섬Great Keppel Island에서 두 달정도 일하며 지냈었다. 매일 일을 마치고 늦은 오후부터 노을이 지는 시간까지 바닷가에 나갔다. 당신엔 수영을 못했기에, 얕은 바다에서 첨벙거리며 놀다가, 책을 읽고 낮잠을 자며 여유를 만끽했다.


회사 생활 3년을 훌쩍 넘긴 26살에 홀연히 회사를 그만두고 떠난 여행지에서 이국살이의 힘듦을 강력펀치로 때려맞듯이 느낀 후에 도시를 뒤로 하고 섬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다. 일도 하며 머물 수 있는 곳이 아름다운 작은 섬이라서. 바다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어서. 이탈리아와 일본, 영국, 독일에서 온 친구들과도 함께 일하며 놀며 우정을 쌓았다. 삼삼오오 모여서 바다 배낚시도 나가고, 스노클링도 하며 쉬는 날을 보냈다. 수영을 못하는 나에게 수영강습을 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그 덕에 물과 친해지면서 호주에서 남은 날들을 더욱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제주 바다에 한가로이 누워있을 때면, 케펠 섬이 생각난다. 일을 그만두고 왔기에 귀국 후 내 인생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현재를 누리자는 마음으로 여유에 흠뻑 젖어 살았던 시절이 이후에 내 삶에 많은 에너지를 주었다. 그걸 알기에 제주에서도 가능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해변 백사장에 누워 보내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호주에서 귀국하자마자 의지충천해서 6개월동안 열심히 수영을 배웠다. 배우고 익혔지만, 결혼과 육아를 하며 수영할 일이 거의 없었다. 8살, 6살 딸들과 제주로 이주하면서 바다 수영을 본격적으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구명조끼를 입고 내 손을 잡아야만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아이들과 함께 거의 매일 바다에 나갔다. 모래 한가득 묻은 수영복과 물놀이 용품 정리가 쉽진 않았지만, 이러려고 제주에 살러 온 것인 마냥 기를 쓰고 아이들 하교 후에 주먹밥을 먹이며 바다로 향했다.


해녀학교를 다녀볼 마음도 있었지만, 중산간에서 주말부부로 사는 나에겐 허락되지 않는 일정과 거리였다. 아쉬운대로 스노클링을 하고, 프리다이빙을 배웠다. 보말을 열심히 주워와서 아이들과 삶아먹었다. 이따금씩 운이 좋으면 소라를 줍기도 했다. 보말넣은 된장국은 아이들이 엄지척하며 먹었다. 거북손을 해부하며 자연의 신비에 흠뻑 젖었다. 거북손을 넣으면 국물이 시원하고 담백해진다는 것을 아이들도 나도 배웠다. 수제비에 넣으면 맛이 일품이었다. 바퀴벌레를 연상시키는 따개비를 가파도에 여행갔을 때 짱아찌로 먹어봤다. 아이들과 재미삼아 따개비를 한 움큼 따서 삶았는데, 하나 맛본 후론 아무도 먹으려들지 않았다. 먹거리가 없던 시절엔 맛난 반찬이었을 따개비인데, 우리집에선 인기가 없었다. 양념을 잘 하면 먹을 것 같긴했으나, 삶고 손질하는 것이 여간 번거롭지가 않아서 내가 마음을 내려놓았다.


바닷 물에 온 몸을 담그면 느껴지는 단절감이 좋았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에서 모래에 집중하고 있을 때 홀로 바닷 속에 들어가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롯이 혼자였다. 세상에 아무도 없이 혼자만 존재하는 느낌. 숨을 참은 만큼만 머물 수 있는 유한한 즐거움. 물 속에서 느껴지는 내 몸의 구석구석.


아이들과 함께 스노클링할 때는 멋들어진 열대어를 발견한 즉시,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같이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아이들은 구명조끼를 벗어던졌고, 내 손을 놓았다. 지금은 높은 곳에서 발도 닿지 않은 깊은 바다를 향해 다이빙할 수 있고, 스스로 헤엄쳐 다닐 수 있는 제주의 아이들이 되었다.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지켜보던 한 관광객이 제주 아이들은 다 저렇게 해녀처럼 수영할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내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내준 바다. 나에게 많은 즐거움을 준 바다. 시간이 갈수록 바닷속이 황폐해져가는 것이 느껴져 애닳기도 한 바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다에 들어가며 많은 생각을 하며 이런 저런 감정을 느낀다.


훌라 동작으로 모아나를 할 때면, 호주의 그레이트배리어리프Great Barrier Reef에서 만났던 황홀한 바닷속이나, 남편과 함께 입수해서 소라를 주웠던 제주의 깊은 바다를 떠올리기도 한다. 카이 동작을 할 때면, 아이들과 함께 했던 스노클링의 추억, 얕은 바다에서 파도타며 웃고 떠들던 순간을 떠올린다. 나는 훌라를 추면서 또 어떤 바다의 추억들을 버무리며 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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