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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록 Jul 18. 2020

빈 공간과 지속되는 공간

<김군>에 대한 리뷰

 다소 과격하지만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김군>은 1980년의 5.18을 (제대로) 다룬 첫 5.18 영화다.


 <김군>은 큰 틀에서 보면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의 주장에 반박하는 영화다. 그러기 위해 제 1광수로 지목된 ‘김군’의 정체를 밝혀내기 위해 당시 항쟁에 참가하거나 그를 목격한 시민들의 증언을 듣고 기록한다. 때때로 이런 종류의 영화는 흔히 다큐멘터리가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가령 너무 쉽게 화를 내거나 너무 안일하게 접근하고서 쉽게 결론지으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에 빠지곤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김군>은 기존 5.18 영화들이 닿지 못했거나 애써 무시하던 지점을 향한다. <김군>이 목표하는 것은 역사적 증거로서의 시민들을 단순히 증언대에 불러다 세우는 것도 아니고, 지만원의 주장에 세세히 반박하며 5.18의 현 위치를 지켜내려는 것도 아니다. 영화가 김군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증언을 그러모으며 1980년 광주를 직시하기 위해 새로이 목표하려는 바가 존재하며 이에 주목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지만원의 헛소리에 있지 않다. 오히려 문제는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그러니까 지만원이 ‘불순한’ 광주를 주장하면 그에 맞서기 위해 ‘순수한’ 광주를 내세워 반박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게 되는 것들이 생겨난다. 요컨대 5.18 시민을 ‘민주화 투사’로 명명하고 광주를 성역화하는 것의 문제다. 5.18을 직시하기 위해 5.18의 어떠한 순수성에 집착하는 것이야말로 1980년 광주를 직시하려는 시도를 방해한다. <김군>은 그동안 광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만들어낸 순수함의 구멍들, 비어있는 인물들을 추적해나간다.


 영화제에서 상영된 <김군>과 정식 개봉해 상영된 <김군>을 같이 두고 얘기할 필요가 있다. <김군>은 영화제 상영 이후 후반부의 상당 부분을 들어내고 새롭게 편집해 다시 영화를 내놓았다. 둘의 차이에 대해 서술하기 위해 영화제 상영본에 대해 우선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다. 서울독립영화제 GV에서 강상우 감독은 마지막 장면을 두고 “전남도청 정문을 찍는데 갑자기 문이 스르르 움직이더라.”(기억의 의존해 작성했기 때문에 내용이 다소 다를 수 있음)라고 언급했다. 감독은 광주의 유령을 포착하는 의미로서 해당 장면을 삽입했고, 이는 5.18의 빈 공간을 찾아나가려는 최초의 시도와도 부합한다. 광주의 빈 공간들, 유령들은 군부에 의해 덮이거나 그동안 5.18을 다시 불러오려는 시도 속에 누락되거나 애써 무시하던 것들이다. <김군>은 수박동의 넝마주이들, 무등갱생원생들, 전두환이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 그저 항쟁의 분위기에 고양되어 거리로 나간 이들이 있었음을 드러낸다. 한 시민은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가 그때 당시 민주화가 뭐고 그런 생각 했을 그럴 나이도 아니고 의식조차도 없었고, 단지 일반 시민들이 그렇게 죽어나가는 걸 보고 그것을 보고 대들었던 것이지.” 그들을 ‘민주화의 투사’로 명명한다면 그들은 광주의 순수함에서 벗어나는 이들이 된다. 결국 ‘순수함’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민주화를 위해 싸우지 않은 개인들 역시 항쟁의 참여자들이었음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한다. 이를 위해 영화는 그들이 어떻게 묶였으며 각자의 삶-역사를 뒤바꿔놓았는가, 그들의 기억을 어떻게 (탈-)구성시키거나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다. 빈 공간의 안팎에서 생존한 시민들을 조명하는 것이 <김군>이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바이다. 한편, 정식 개봉된 상영본의 후반부는 세월호 집회와 거기에 참여한 5.18 생존자 주옥 씨를 비추는 장면으로 대체되었다. 영화제 상영본이 광주의 빈 공간을 담아내려는 시도였다면, 정식 상영본은 1980년 광주의 현재성, 그러니까 5.18은 어떻게 지속되고 반복되는가를 담아내려는 시도에 가깝다. 영화는 5.18과 4.16의 거리를 좁히며 주옥 씨가 두 공간에서 행하는 동일한 행위를 본다. 빈 공간과 지속된 공간. 어느 한 쪽이 감독의 결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 우리는 두 상영본을 나란히 두고 5.18을 ‘제대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윤아랑 평론가의 '<김군>, 순수하지 않은'에 빚지고 있는 글임을 밝힙니다.

https://brunch.co.kr/@jesaluemary04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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