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eday My Prince Will Come
Be Bop의 탄생을 재즈 혁명이라고 한다. Charlie Parker와 Dizzy Gillespie, Bud Powell, Thelonious Monk, Charles Mingus 등 당시 혈기 왕성하고 새로운 에너지로 가득 차 있던 젊은 연주자들은 기존의 틀을 부수고 폭발시켜 새로운 문법을 완성했고 그 현장에 Miles Davis는 막내로 참여하고 있었다.
Miles Davis는 Charlie Parker의 신기에 가까운 솔로 연주를 흠모하였으나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한편, 예술성이 강조된 Be Bop은 이전 Swing Jazz의 대중성을 급격하게 상실해 갔다.
Miles Davis는 지나친 예술성으로 아직 대중에게 다가가기 시기상조였던 Be Bop이 가진 한계에 조금은 대중 친화적인 Cool Jazz라는 아주 절묘한 절충안을 탄생시켰고 그 영향으로 서부 지역의 West Cost Style의 Jazz로 확대 재생산하게 되어 외면받았던 Jazz의 대중성을 회복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도 해냈었다.
그는 재즈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같이 연주했던 멤버 구성에서도 항상 이슈가 되어 살아생전 재즈사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었다. Miles Davis가 Someday My Prince Will Come 앨범을 제작할 당시도 멤버의 변화가 있었고 특히 John Coltrane이 자신의 음악을 하기 위해 밴드를 떠났음에도 Someday My Prince Will Come 한 곡 만이라도 연주 참여를 부탁해 곡에서 Hank Mobley와 John Coltrane이 차례로 연주하게 된다.
곡은 Paul Chambers의 베이스와 Jimmy Cobb의 심벌이 박자와 음을 조율하듯 시작해 Wynton Kelly의 피아노 전주가 연주된다. 이후 Miles Davis가 뮤트 트럼펫으로 Someday My Prince Will Come의 주 멜로디를 간결하게 연주하고 Hank Mobley의 색소폰과, Wynton Kelly의 피아노 즉흥연주, 다시 Miles Davis의 트럼펫 주 멜로디에서 이 곡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즉흥연주 진행된 후 Miles Davis의 트럼펫 주 멜로디 연주와 Wynton Kelly의 피아노 연주로 곡이 마무리된다.
Miles Davis는 제목(Someday My Prince Will Come)이 주는 기다림의 이미지를 특유의 미니멀리즘 한 연주로 로맨틱하면서도 간절한 뉘앙스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와 대조적으로 Coltrane은 마치 곡의 내면에 숨겨진 감정적 격동을 끌어내는 듯하다. Paul Chambers와 Jimmy Cobb의 반주는 흠잡을 데 없이 탄탄하게 솔로 연주자들을 받쳐주고 있으며 Wynton Kelly의 피아노의 경우 미묘하게 Coltrane의 에너지에 따라 동조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앨범 커버 이미지는 당시 그의 아내 Frances Taylor 사진을 사용했다. Miles는 이 곡과 커버를 통해 그녀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으나, 실제로는 가정불화가 깊어지던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 Frances는 “그의 음악은 내게 로맨스를 주었고, 현실은 내게 침묵을 강요했어요.”라고 인터뷰했다. 이후 Frances Taylor는 Miles의 《 E.S.P. 》의 음반에 다시 등장하지만 이때는 이미 관계가 파탄 직전이었다고 한다. 결국 1968년 Miles의 잦은 바람과 추궁하는 Frances에 대한 구타가 결정적 사유로 법적 이혼하게 된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그는 나를 그의 음악 안에 가두었어요.
그 음반 커버 속에 갇힌 채 나는 점점 내 삶에서 사라졌죠.”
결과론적으로 제목 참.... Someday My Prince Will C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