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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hailey Dec 18. 2022

벗어날 수 없는 엉따의 매력 w. 버스정류장

뼈 시린 칼바람 속 녹아드는 일상의 따스함

청명한 가을 하늘을 즐긴지 며칠 지나지 않아 칼바람에 따귀 맞는 겨울 날씨가 도래했다.

평생 수족냉증을 경험하고 있는 나에게 지구 끝까지 피하고 싶은 손님이 다시 찾아온 것이다. 어제보다 5도 낮다는 알림으로 하루를 시작, 영하 13도의 날씨는 숫자만으로도 충분히 잔인했다.

올 해는 최대한 아주 늦게 김밥이 되겠다며 검은 롱패딩을 옷장 깊숙이 숨겨놨던 나인데, 13이라는 숫자에 굴복하고 말았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1시, 용기 있게 집 밖으로 나섰다. 건물을 벗어나 길거리에서 마주한 바람은 김밥 패딩 속 곳곳으로 파고들었고 몸은 자동으로 웅크려져 어기적 걸음을 재촉했다.

약속 장소를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5분, 피 속까지 살얼음이 생겨나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버스정류장 타야 할 버스는 5분이 남았고 잠시 쉬고자 자리에 앉았다.

거리를 보며 멍 때림(혹은 명상)을 하고 있는 중 따스한 온기가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정류장 온돌 의자(aka. 엉따)가 내 무게를 느끼며 열일하고 만들어 낸 온도인 것이다.

두툼한 패딩을 뚫고 온 몸까지 온기가 전해지기까지 단 30초. 살얼음 박혀있던 피가 빠르게 도는 느낌을 받았다. 행복은 큰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일상 속 긍정의 산물인 것이다.


잠시, 아주 잠시 여기에 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버스가 도착했고 급하게 일어나 탑승했다.

영하 13도 잔인한 숫자 속에서 나를 온돌 보호막으로 지켜준 '버스정류장 엉따'

서울 시민으로서 낸 세금이 아깝지 않은 몇 안되는 순간.

행복이란 감정은 아주 소소한 생각의 변화 그에 파생되는 감정임을 또 한번 인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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