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몰라, 내 첫 작품 <모르는 사이>

나의 첫 연출작 <모르는 사이>가 남긴 것

by benow
tempImagemTTCWT.heic <극 중 윤미 배우에게 디렉팅을 하는 모습>

나의 첫 단편 영화는 2022년에 연출한 <모르는 사이>다. 제목 그대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완성했고, 아무도 모르는 단편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그건 절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처음이라 서툴렀고 실수 투성이었지만 나에게는 마치 걸음마를 뗀 아이를 닮은 작품과 같다. 3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모르는 사이>는 아무도 모르게 밑바닥에서 나를 떠받쳐 준 기반이 되어주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숨기기에 급급했던 내 작품에 미안한 마음이 든다. 즉, <모르는 사이>는 내가 다음 작품을 찍는 데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 될 나의 과거이다. 그래서 촬영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잠시 회고해 보았다.


<모르는 사이>는 싱글맘인 윤미가 딸의 친구 바다가 자신의 돈을 훔쳤다고 의심하는 이야기이다. ‘서스팬스’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시나리오였다. 아무래도 첫 연출작이다 보니 ‘서스팬스’에 대한 이해도가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처음에 관객들도 돈을 누가 훔쳤는지 모르게 시나리오를 설계했다. 합평 당시, 관객들은 윤미의 딸이 돈을 훔쳤다는 것을 초반에 알아야 할 것 같다는 피드백이 들어왔었다. 피드백을 반영해 시나리오를 고치긴 했지만 그때 당시에 온전히 그 이유를 이해하진 못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히치콕의 폭탄 이론을 통해 피드백을 뒤늦게 이해하게 됐는데, 알프레드 히치콕은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서스팬스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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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람이 테이블에 앉아 5분간 따분한 야구 이야기를 한다. 이에 테이블 아래에 있던 시한폭탄이 터져버리면 관객들은 10초 동안 충격을 받게 된다. 하지만 같은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테이블 아래 5분 뒤 터지는 시한폭탄이 설치되어 있는 것을 미리 알려주면 관객들은 언제 폭탄이 터질지 조바심을 느끼게 되며 5분간의 따분한 대화만으로도 관객들의 주의를 끌게 만들 수 있다.”


이는 관객이 폭탄의 존재를 미리 알면 5분간의 따분한 대화 속에서도 긴장감 즉, 서스펜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관객들도 처음부터 같이 속이고 마지막에 반전을 주겠다고 혼자서 착각을 했던 것이다. 다행히 피드백을 수용해 초반에 돈을 훔친 게 누구인지 보여주었지만, 영화의 문제는 그것뿐만은 아니었다. 영화 내내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는 시나리오에서 주인공 윤미가 감정적으로 폭발하기까지의 감정선을 세세하게 다루지 못했고, 결국 관객 입장에서는 ‘급발진’으로 보이게끔 연기 연출을 해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촬영장에서는 연기에 관한 연출을 매우 수월하게 했다고 생각했고, 주변 스태프들도 연기 연출이 너무 좋았다고 얘기했었다. 그럼에도 결과물을 보고 나니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물이 나왔고, 나의 연출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니, 영화 연기와 연극 연기의 차이를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연출을 했던 부분이 원인이었다. 영화 연기는 연극과 다르게 ‘응축’된 에너지가 필요했는데 나는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마음껏 발산하게끔 했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화면에서 배우들의 감정이 너무 과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관객이 특정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많이 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 이후로, 영화 연기를 조금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던 것은 배우는 카메라 롤을 하는 시점부터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를 누르기 전부터 호흡과 몸 상태를 만들어두고, 감독은 그런 배우를 지켜보며 어느 순간의 호흡이 사실과 가장 근접해 보이는지를 아주 세심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연출은 현장에서도 계속해서 답을 찾아가야 하는 책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공간 속에서 가장 있을 법한 인간의 호흡을 찾아내면, 그때서야 비로소 관객은 그 시간을 감각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면 알수록 영화는 섬세함과 직관 그리고 통찰력이 필요한 예술이다.


tempImage2ikQwN.heic <극중 바다가 수빈에게 손 마임으로 새 흉내를 내는 장면>

이처럼 첫 작품을 통해 배운 것은 많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영화를 찍겠다고 결심할 수 있었던 출발점이 바로 <모르는 사이>였다는 점이다.

예전에 마음공부를 하다가 인상 깊었던 얘기가 있는데,


“우리 자신이 새처럼 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에 날았던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 얘기는 즉, 우리는 과거 경험에 기반하여 우리 현재의 가능성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는 미래에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기억이 자세히는 안 나지만, 대충 이런 식의 내용이었다.

과거에 단편 영화를 연출했던 경험 덕분에 나는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단편을 찍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겁이 많은 나에게 매우 큰 변화다.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면서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진입장벽을 조금씩 허물어가고 있단 생각에 설레기도 한다. 그리고 그 벽 뒤에는 내가 예전부터 만나고 싶었던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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