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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반성문과 로맨틱 코미디 2

<유브 갓 메일>로 이야기해 보는 로맨틱 코미디

by benow

뜬금없이 들릴 수 있다. 갑자기 로맨틱 코미디 이야기라니. 사실, 내가 이번에 쓰는 시나리오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이다. 로드 무비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지난번 연출했던 영화 두 편은 드라마 장르였기 때문에, 이번은 나의 로코물 첫 도전이기도 하다. 로맨틱 코미디를 쓰기로 결심한 후에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생각난 영화는 노라 애프론 감독의 <유브 갓 메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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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나의 첫 단추가 <유브 갓 메일>이다 보니, 이 영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유브 갓 메일>은 1940년 에른스트 루비치가 연출한 <모퉁이 가게>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을 연출한 노라 에프런 감독의 연출작이다. 주인공 캐서린 캘리(맥 라이언 분)가 길모퉁이 서점을 운영하면서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조 폭스(톰 행크스 분)와 정을 쌓아갔는데 알고 보니 그는 대형 서점을 오픈한 사장이었고, 이 둘은 오랜 시간 앙숙처럼 지내다 결국 사랑하게 되는 내용이다. 톰 행크스 특유의 풋풋하고 인간미 넘치는 모습과 보기만 해도 사랑에 빠지게 되는 맥 라이언의 캐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신기하게도 난 이 영화와 첫 만남을 기억한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안방에 있는 작은 TV에 <유브 갓 메일> 비디오테이프를 자주 틀어놨었다. 안방 침대에 엄마와 함께 누워 영화를 봤던 장면이 선명하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나에게 습관이 되었고, 겨울마다 찾아보는 친구가 되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 흘러나오는 노래와 컴퓨터 효과음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 어쩌면 엄마는 언제 어디서든 내 곁에 있어주는 친구를 만들어 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영화가 친구 역할을 톡톡히 한건 내가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났던 시기였다. 처음 겪어 보는 어려운 일들 속에서 나는 편안함과 희망을 얻고자 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랑과 따뜻한 연대 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주인공들은 자신이 바라던 사랑을 찾고, 그 주변에는 항상 주인공들을 응원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나 또한 순수한 마음으로 그들이 그리는 사랑을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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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연대’. 내가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내가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문득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유브 갓 메일>이 단순해 보이지만 인생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가 있어”.


시간이 한참 지나서 30대가 된 뒤에야 엄마의 말뜻을 이해했다. 돌아가신 캐서린의 엄마를 대신해 엄마 역할을 자처하는 세실리아, 캐서린과 함께 서점을 운영하는 서점 직원들, 조 폭스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하는 캐빈의 연대가 보였다. 그 연대 속에서 주인공들의 사랑은 활기를 띤다. 그리고 인생의 한 챕터를 끝내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캐서린, 그리고 동시에 찾아온 새로운 조 폭스와의 사랑. 어딘가에 그대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사랑스러운 존재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캐서린의 세계는 나의 인생과 닮은 점들이 많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영화는 해피앤딩으로 끝날 것을 이미 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 폭스와 캐서린이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많은 문제들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있는 그대로 보인 ‘순수한 사랑’을 응원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편안함 때문에 나는 계속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찾게 된다. 현실과 닮아 있으면서도 묘하게 이상적인 세계 같은 곳에 빠져들어 나는 그 경계 속에서 잠시나마 행복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이번에 만들 영화는 어떻게 그려질지 모르겠지만, 내가 찾아낸 로맨틱 코미디의 가치가 조금이나마 묻어나길 바랄 뿐이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공식 속에서 두 주인공들이 이상적인 사랑을 찾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이야기. 불확실한 미래에서 오는 나의 불안감이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는 필요가 없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 기대어 나도 이번 시나리오 속에서는 행복하게 헤엄쳐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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