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12월 문화 행사

우리의 4번째 크리스마스

by 헤일리 데일리

나는 언제부터 산타를 믿지 않았을까? 어렴풋이 기억하길 외삼촌이 산타로 변장해서 선물을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7~8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는 특별히 선물을 받은 기억이 없다.


산타의 존재는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순수함을 너무 일찍 잃었다는 생각에, 우리 아이만큼은 크리스마스에 대한 동심을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어린이집 산타클로스에 내정돼 있던 남편은 과감히 그 역할을 다음 타자에게 넘겨주었다. 자세한 사연은 이렇다.


작년 일이다. 얼떨결에 어린이집에서 산타 역할을 맡게 된 남편. 의외의 연기대상감 액팅(acting)으로 극찬을 받았고, 25년도 산타로도 암암리에 확정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가 눈치를 챘다는 것. 은근슬쩍 '산타는 아빠야'라면서 되려 어른들을 대혼돈의 세계로 빠뜨렸다.

아는 척, 모르는 척 밀당의 시간을 보내다가 우리는 다른 아버님께 산타를 넘겨드렸다. 산타는 아빠가 아님을 정확하게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우리 집 애도 오래도록 순수하긴 글렀다.)



어찌 됐든 지난 19일에 어린이집 행사를 재밌게 끝내고 와서 우리는 본격적인 자체 행사를 다시 준비했다. 대망의 25일에는 산타가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주신다는 대명제를 깔며, 아이가 조금이라도 엄마와 아빠의 말을 잘 듣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사실 아이가 말을 안 들을 때마다 이 말을 남발했던 것 같다.


너 그러면 산타가 선물 안 준다?


돌이켜보니 산타는 동심의 세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엄빠의 말을 잘 듣게 하기 위한 훈육 내지는 가스라이팅이었나 싶다. 음, 이 점은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성심성의껏 이벤트들을 준비했으니 엄마를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일단 근처 장난감 창고를 찾아가서 티니핑 선물을 저렴히 사 왔다. 그토록 노래를 부르던 '프린세스 카(car)'다. 파산핑만큼은 절대 사주지 싶지 않았지만, 아이가 너무 간절해 보여서 사주기로 했다.



먹을 것에 진심인 남편은 케이크를 준비하고 이렇게 우리는 24일을 맞이했다. 크리스마스이브 일정은 뽀로로 극장판 보기! 인근 몰에 사람이 너무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크게 붐비지는 않아서 잘 다녀왔다.



이후 친정 식구들과 저녁을 먹고 귀가한 우리. 아이는 집에 와서도 신나게 놀다가 잠이 들었다. 그 후, 대망의 산타 할아버지는 스리슬쩍 다녀가셨다고 한다.



올해는 ai덕에 기념사진과 동영상도 남겨주시고 떠나셨다. 그래서 아이는 산타의 존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빠가 아니라는 것도 믿는 눈치다. 고마워요 챗GPT.



아이는 성탄절 아침에 티니핑 차를 보고 어찌나 좋아하던지! 혼자 신나게 가지고 놀았다. 그 모습을 보니 안 사줬으면 어쩔 뻔했나 싶었다. 5만 원의 행복이다. 요즘 물가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사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산타와의 기념사진과 선물을 끝으로 올해 성탄절 이벤트는 마감을 했다. 아이가 하루 종일 장난감을 만지작거리며 실컷 놀아준 덕분에 집콕으로 마무리! 즐겁고 편안한 성탄절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남편은 장난감 가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돼지 베개라도 챙겼는데... 내 선물은 어디 있지? 내 선물은 누가 주는 거지? 나도 선물 받고 싶은데!! 웃프지만 이게 엄마의 삶인 건가.


그래, 온 가족이 행복했으면 됐지 뭐. 엄마는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해 볼 것이다. 내년에는 산타가 나에게도 오길 기도하며 해피 크리스마스!


P.S. 저도 착한 어른이가 돼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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