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문화유산

by 헤일리 데일리

친정 엄마가 식구들을 소집했다. 바로 김장을 하기 위해서다. 그 날짜가 통보된 날부터 나는 실의에 빠졌다. 김장일이 너무 하기 싫었기 때문. 일은 하기 싫지만 먹고는 싶은 이기적인 내 맘을 꾸짖어도 보았지만, 그래도 귀찮음이 몰려왔다.


꾸역꾸역 친정에 들어서자 엄마는 이미 많은 일을 손수 해놓으셨다. 갖은 재료 준비는 물론, 깨끗이 씻어서 절여진 배추까지. 나는 파, 갓, 무 등을 다듬어 양념에 넣기 좋게 썰기만 하면 되었다.




무채를 써는데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 많은 채소와 대용량 젓갈 등을 사서 준비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괜히 죄송했다. 심지어 좁은 싱크대가 아닌 넓은 베란다에서, 찬물과 냉기로 씨름했을 엄마 손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굳건히 무를 칼로 썰었다. 옆에서 엄마 아들(내 남동생)도 열심히 거들었다. 나는 무가 무겁기도 하고 채칼이 낯설어서 몸을 사렸던 반면, 거구의 몸으로 요리 자부심이 넘치던 동생은 결국 손에 피를 보았다. 그 길로 채소 손질에서 배재된 자는 지체 없이 수육 고기를 사러 갔다. 노린 건가.




밖에 나간 그 자는 한참만에 고기와 술을 잔뜩 사들고 들어왔다. 편의점에서 핫다던 말차맛 막걸리와 스페인 소주가 영롱하게 빛났다. 그는 심지어 인형 뽑기도 성공했다며 조카에게 귀여운 키링을 안겨주었다. 같은 시각 본인 엄마의 눈에선 레이저가 나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말이다.


참고: 이균 말차막걸리의 맛은 아주 진한 말차라테에 가깝다. 술맛이 거의 안 나고 달달해서 술을 기대했던 사람에겐 불호일 수도 있다. 처음 판매됐을 땐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젠 왜 사는 데 제약이 없는지 알 것 같은 그런 맛.




김치 속을 다 만들고 배추에 양념을 넣기만 하면 되는 시간이다. 손을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열심히 배추를 버무렸다. 그건 인정. 양념이 어찌나 잘 되었는지 배춧잎에 싸서 먹기만 해도 꿀떡꿀떡 넘어갔다. 특히 강화도산 매운 고춧가루가 감칠맛을 더했다.




그렇게 마무리를 하고 김치통에 차곡차곡 넣으니 어느덧 김장 끝! 뒤에 엄청난 정리작업이 남아있긴 했지만 친정아빠까지 포함해 우리 네 식구는 자연스러운 분업으로 마무리를 했다. 예전엔 아빠가 김장할 땐 안 계셨기도 했거니와 집안일을 잘 안 하셨던 것 같은데... 이번만큼은 누가(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뒷정리를 도우셨다.





드디어 수육과 함께! 저녁시간이 되어 우리 남편도 합류를 했다. 역시 먹을 복이 넘치는 사람이다. 장모님이 특별히 더 잘 차려주기도 지만 말이다. 대식가인 남편은 배추에 고기를 두세 개씩 넣어서 야무지게 잘 먹었다.





내가 그나마 마음을 고쳐먹고 김장일을 열심히 도울 수 있었던 건, 같이 글쓰기를 하고 있는 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 덕분이다.



김장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지정됐잖아요.




무려 12년 전인 2013년에, 김장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었다. 나는 이 사실도 모르고 지냈다. 그리고 2017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에 지정되었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으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출처: 국가유산포털)



이렇게 김장이 중요한 문화임을 알고도 더 이상 나태하게 김치 담그기를 할 수 없었다. 살아있는 손맛의 장인이신 우리 엄마에게서라도 무언가를 배우고 그 전통을 이어나가야겠다는 사명감이 마구 샘솟았다. 그러한 마음가짐 덕분에 이번 김장은 내게 있어서 조금 수월했다고나 할까. 역시 태도가 사람을 바꾸나 보다.




하지만 뭐가 마음에 안 드셨는지... 12월 중순에 고향식으로 김장을 다시 할 거라는 우리 집 여사님. 나는 다시 그 여정에 소환될 것 같다. 벌써 피로가 몰려오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다.


누가 우리 엄마 좀 말려주세요.




#김장 #김장철 #유네스코문화유산 #무형문화재

keyword
금요일 연재
이전 11화지금 우리 학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