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인생 30개월 차 호두. 제법 의사표현은 다 한다. 수용언어(다른 사람의 말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가 더 빨리 발달했기 때문에 찰떡 같이 알아듣는 것은 예사다. 심지어 어떨 때에는 알아 들었어도 못 들은 척이다. 이 말인즉슨, 눈치 백 단이라는 소리다.
어제 하원할 때, 담임 선생님이 친구와 호두 사이에 있었던 일을 말씀해주셨다. 그 친구가 호두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아 갔는데, 이에 호두가 크게 분노했노라고. 선생님의 요지는 호두의 강한 '소유욕'이었다. 나는 애가 외동으로 혼자 자라서 그러나 싶어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사는 법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집에 돌아온 나는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물건 쟁탈전을 벌인 친구가 누구일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같은 반 엄마들끼리 워낙 친해서 이런 에피소드가 생기면 서로 웃고 떠들며 얘기하곤 하기에 친구 이름을 알고 싶었다. (담임쌤께서는 아이끼리 다툼이 어른 간 분쟁으로 번질까 봐 친구 이름을 익명으로 알려주신 것 같다.)
나는 단순히 궁금한 마음에 호두에게 물었다.
"오늘 호두 물건 가져간 친구가 누구야?"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요지부동)"
몇 번을 물어봤지만 호두는 끝끝내 그 친구가 누구인지 말하지 않았다. 나름 친구와의 의리상 비밀을 지켰나 보다. 엄마는 상황이 웃겨서 장난 삼아 이름을 물어본 건데... 아이의 의리 앞에 머쓱해져 버렸다.
재잘재잘 거리다가도 눈치 상 입을 꾹 다무는 행동은 이번만이 아니다. 얼마 전에 삼촌과 놀던 중 삼촌이 방귀를 뿌웅~ 뀐 적이 있었다. 삼촌을 놀린답시고 주위 어른들이 호두에게 물었다.
"호두야, 방귀 누가 뀐 거야? 너가 뀌었어?"
이 때도 아이는 묵비권 행사를 했다. 누명을 쓸까 봐 "삼촌이 뀌었어"라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끔 폭로를 할 줄 알았더니 말이다. 당시 호두는 나름 삼촌을 감싸주고 체면을 세워주고 싶었나 보다. (정작 삼촌은 전혀 타격감이 없었지만;;;) 만 2세의 눈치와 배려심이라니... 어른들의 유치한 장난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엄마인 내가 보기에도 아이의 행동이 놀라웠고, 눈치가 뛰어나게 발달했음 또 한 번 느꼈다.
참 적재적소에 눈치를 사용하는 호두다. 오늘은 집에 놀러 오신 이모할머니(내게 이모)께 연신 애교를 부렸다.
"이모~ 이모오~~"
'할머니'를 빼고 그냥 '이모'라고 부르니 이모할머니가 끔벅 넘어가신다. 덕분에 용돈도 두둑이 챙겼다.
이런 호두를 보고 있노라면 눈치도 본능이구나 싶다. 이 어린아이가 눈치를 학습해서 시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배워서가 아닌 본능적으로 눈치를 사용한다고 보는 편이 맞다.
반대로 생각하면, 사회에서 종종 눈치 없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들도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일부는 본능적으로 눈치가 결여된 채로 세상에 태어난 것일 수도?! 그렇기 때문에 눈치 챙김이 필요한 이들을 만났을 때 무조건 맹비난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눈치를 본다'는 것이 때로는 안 좋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좋은 의미의 연장선에서, 눈치껏 매너 있게 타인을 배려하며 살면 더 나은 사회가 되리라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