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물욕의 가벼움

by 헤일리 데일리

한동안 잘 참고 있었는데. 가방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또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것이야말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인 것인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지은이: 밀란 쿤데라)



작년 초. 새해 다짐으로 가방 사지 않기로 했었다. 주로 쓰는 가방 몇 개를 제외하면 그냥 굴러다니는 미니백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New Year’s resolution 새해 다짐


평소에 일을 할 때에는 무거운 책들을 잔뜩 넣고 다녀야 해서 나에겐 에코백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가죽 가방은 그 자체의 무게도 있고, 무겁게 물건을 넣고 다니면 처짐이 발생했으니까.

cotton (tote) bag/ canvas (tote) bag 에코백


아이랑 외출할 때도 이것저것 담을 수 있는 보부상백이면 족했다. 이제는 이유식 재료나 여벌 옷, 기저귀를 넣지 않아도 돼서 짐이 간소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많이 챙겨 다니는 보부상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 있어서 미니백이란, ‘예쁜 쓰레기’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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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Quiz: '예쁜 쓰레기'를 영어로 뭐라고 할까요?



<정답> white elephant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흰색 코끼리'지만, 실용성이 없는 고가의 (아름다운) 물건을 가리킬 때 쓰인다.

(유래: 과거 동남아시아의 왕족은 자신과 관계가 좋지 못한 귀족들에게 이 흰색 코끼리를 선물했다. 코끼리를 선물로 받아도 관리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신성한 동물이기 때문에 처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에 근거하여 영어 관용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가방을 사지 않겠다던 다짐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름이 되자 은색 컬러의 크로스백이 사고 싶어졌다. 마침 실버백이 하나도 없었고, 더운 날씨에 시원해 보이고 싶다는 자질구레한 변명을 붙여가면서 가방 쇼핑에 혈안이 됐다. 그래서 결국 휴대폰이 들어가는 크기의 가방을 찾아 헤매다가 마음에 드는 하나를 샀다. 하지만 머지않아 라탄백이 또 사고 싶었으니… 참 사람의 욕심이란?!

greed 탐욕


어찌어찌 가을은 잘 넘겼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여 패딩백을 하나 사주었다. (물론 내가 나에게!) 패딩백도 생각보다 가벼워서 보부상에게 아주 딱이었다. 그래서 현재 질리지 않게 데일리백으로 잘 들고 다니고 있는 만큼 만족도가 아주 높다.

satisfaction 만족


이쯤에서 딱 일 년 전 겨울에 샀던 털가방이 생각난다. 서너 번 들고 다녔으려나? 겨울이 지나서 장롱 속으로 직행했고, 그 이후로 한 번도 꺼내 들지 않았다. 없어도 되는 물건을 굳이 사서 또 쓰레기로 만들었으니, 이 지점에서 또 한 번 반성모드다.


I regret it deeply.
나는 크게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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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나는 미니멀리즘을 꿈꾸고 있다. 진짜 필요한 재화가 아니면 사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과소비, 낭비를 줄여서 우리 집 가계도 살리고, 지구 환경 문제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 그래서 웬만하면 옷, 가방, 액세서리 등을 사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어린 아이랑 다니다 보니 어디에 꾸미고 나가기 힘든 게 현실이라서 그런 것들이 그다지 필요하지가 않다.

unnecessary 불필요한


그런데 며칠 전부터 새 가방에 대한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제 곧 봄도 되고 하니까 기분 전환 겸 하나 내지는 둘(?)을 사고 싶었다.

for a change 기분 전환 삼아서


알고리즘은 어쩜 내 마음을 그리도 잘 아는지 노트북을 열자마자 가방 특가 사이트를 띄워줬다. (광고 팝업을 차단하는 앱을 설치했는데도 광고가 뜬다.) 알고리즘 녀석은 남편도 모르는 내 마음을 너무 잘 알아주어 고맙기도 하지만 때로는 도청 장치를 달아놨나 싶을 정도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심지어 발설한 적 없는 나의 쇼핑 욕구까지도 찰떡같이 알아버려서 알고리즘이 무섭기도 하다.

I am so scared. 나는 너무 무섭다
It scares me. 그것이 나를 무섭게 한다.


광고를 보아하니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서 특가를 진행하는 "special event"란다. 사실 이때까지 그날이 다가오는 것도 몰랐다. 여자가 남자한테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알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분들은 백을 선물로 받나 보다. 갑자기 부럽네? 부러우면 지는 건가?


Don’t let them get to you!
그들에게 영향받지 마!



'내돈내산'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지만, '발렌타인 데이'라는 단어에 갑자기 마음이 짜게 식었다. 그리고 광고창을 휙 꺼버렸다. 이상하게도 가방을 사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아마 이 조차도 상술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던 것 같다. 휴, 어찌 됐던지 간에 한 고비를 잘 넘겼다. 언제 또 스멀스멀 올라올지 모를 내 소비욕이지만 말이다.




<오늘의 명언>

Greed makes man blind and foolish, and makes him an easy prey for death. - Rumi

탐욕은 인간을 맹목적이고 어리석게 만들고, 죽음을 향한 손쉬운 먹잇감으로 전락시킨다.

- 루미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