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2021년은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회식이 거의 종말하다시피 한 해로 남을 것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는 18시 이후 외식 모임을 2명 이하로 제한하고 있습니다. 5명에서 2명으로 제한한 것은 그전까지 진행되던 4인 모임을 차단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2인 이하 제한이 걸리자마자 은근슬쩍 강행하던 회식이 모조리 사라졌습니다. 사실 저로서는 코로나 정국에서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이 회식 자제 문화입니다.
회식이 좋은가,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되어왔습니다. 주로 회사 상사와의 어색하고 불편한 대화와, 회식 자리에서만 몰래 교환되는 정보의 가치와, 회식자리가 반복되며 쌓이는 피로감 등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회식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 핀트와는 약간 거리가 있습니다. 저는 위의 모든 담론은 잘 모르겠고, 그냥 술 때문에 회식이 싫습니다. 한국 사회의 회식이 곧 저녁 술자리이기 때문에 회식이 싫습니다. 이건 직장문화, 조직문화의 이야기라기보다 좀 더 원천적인 생존 본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앞선 문장만 읽으면 얼핏 제가 술을 좋아하지 않는 일명 '알쓰'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대학시절과 입사 직후에는 술자리를 정말 좋아하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술자리가 없으면 어딘가 허전하다고 느끼는 부류에 속했습니다. 학회 후 뒷풀이를 가지 않으면 서운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술을 좋아합니다. 흔히 말하는 '술이 술을 부르는 타입'에 속합니다. 술을 마시면 평소에 못하던 이야기를 술술 불어버리고, 친구들과의 모임에 술이 빠지면 입이 비죽 튀어나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회식 반대론자가 되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건강 때문입니다. 저는 수요일 목요일 즈음 저녁자리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마시는 소주 몇잔이 그 다음날의 컨디션을 완전히 망쳐버린다는 사실을 지금에야 깨달았습니다. 이제 더이상 대학생일 때와 달리 시간을 슬슬 흘려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리기도 했습니다. 매주 적어도 40시간, 매일의 9 to 6를 회사 사무실에서 보내야 하는 직장인에게 그 외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처절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수많은 과장님 차장님들이 조금이나마 저희 사회초년생들의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마음으로 한자 한자 써내려가볼까 합니다. 우리 코로나 끝나고도 술 좀 그만 마시면 안될까요?
혹시 유튜브 자주 들어가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퇴근하고 매일 유튜브 보는 것이 이젠 일상이 되었습니다. 다이어트 브이로그를 자주 봅니다. 요즘 코로나로 생애 최대 몸무게를 찍었거든요. 몸이 무거워지고, 괜히 체력이 더 떨어지는 것 같아 가능하면 건강하게 먹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항상 성공하지는 못합니다. 그래도 건강한 음식을 먹을 때 스스로 뿌듯해하고, 좀 몸에 무리가 가는 음식을 먹었다 싶으면 반성하려고 합니다.
비단 저만 그런게 아닙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성인 10명 중 4명은 3kg 이상의 체중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완화되어도 찐 3kg의 체중은 완화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입니다.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많은 직장인들이 복부 비만 때문에 고민을 달고 삽니다. 문제는 그 고민을 해결하지 않고 그냥 음주와 흡연을 지속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 또래 사회초년생들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제 주변 직장인들 중에 요즘 다이어트 안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PT샵에서 회당 5만원의 피티를 받으며 강도 높은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있고, 밤 늦게 공원이라도 한바퀴 돌면서 가벼운 운동만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이어트를 해야겠다 말 하고서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는 입 다이어터들도 있겠죠. 정답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정말 많은 사람이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이어트 관련 컨텐츠가 인기를 끌고, 헬스 트레이너들이 몇십만 유튜버가 될 수 있는 거겠지요.
많이들 아시다시피 다이어트는 참 힘든 과정을 내포합니다. 떡볶이와 치킨의 민족에게 샐러드와 닭가슴살은 견뎌내기 힘든 고통이지요. 그런데 안그래도 힘든 다이어트에 술은 정말 치명적입니다. 술을 마시면 기름진 안주를 많이 먹게 되는 건 물론이요, 그날 하루는 그냥 운동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술자리는 매일 습관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다이어터들의 의지를 꺾는 치명적인 한방입니다. 싫은게 당연하죠.
이렇게 말하면 '나 다이어트 하고 있으니 회식 싫어요'라 말하는 전형적 'MZ세대 개인주의자'로 비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사람들이 술을 조금씩만 줄인다면(적어도 부서 회식이라도 줄인다면!) 다같이 건강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주 1회, 많게는 3-4회까지 기름진 음식에 술을 마시는 삶을 지속한다면, 정말 언젠가 건강의 적신호가 올 수도 있으니까요. 기왕이면 오래 건강하게 사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요즘의 다이어트 열풍은 한국의 음주/기름진 음식 문화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회식 찬성파는 흔히 '회식이 조직 단합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하고는 합니다. 의미 있는 주장입니다. 미생의 장그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오차장과 함께 소주를 기울이며 스트레스를 풀고 결속을 다지고는 했습니다. 소주 광고에도 흔히 직장에서의 업무 고민을 털어버리고 한잔 기울이는 소탈한 직장인들의 모습이 많이 조명되고는 합니다.
요즘 저는 장그래가 혹시 무한 체력을 가지고 있는 타고난 근수저인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있을때 조직원들과 회포를 푸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회식은 필연적으로 그 다음날을 망칩니다. 물론 선택받은 체력왕들은 제외겠지요. 저는 안타깝게도 체력왕이 아니라, 다음날 업무까지도 망치는 술자리가 싫습니다.
뇌는 오전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오전에 업무 집중도가 높은 편입니다. 그러나 저녁 술자리는 오전 루틴을 완전히 망쳐 버립니다. 술자리 다음 날 아침의 몸은 젖은 솜처럼 무겁습니다. 회식 후 출근은 가슴 속 사직서의 글씨를 더욱 선명해지게 만들죠. 어찌저찌 업무를 무사히 끝낸다 해도, 회식 후 다음날 퇴근 후는 그저 몸을 회복하기 위한 시간으로 써야 할 뿐입니다. 강철 체력을 가지지 않은 다음에야, 회식을 하고 그 다음날까지 일상의 루틴을 지키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술은 정서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안그래도 무한 경쟁에 획일화된 사회구조로 힘들어하는 한국인들에게, 술은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더욱 심화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직원들의 정서 불안, 건강 적신호는 충분히 술을 자제하도록 권고할 만한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업무 능력까지 저해시키니 사실상 구성원들의 친목 도모 외에는 큰 장점이 없는 셈입니다. 물론 입사할때 특정 체력 조건 이상의 인원만 입사시킨다면 좀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불법입니다)
회식이 정말 요즈음의 조직 단합에 도움이 되는지도 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 직장인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회식을 통해 과연 조직이 단합될지를 질문해봐야 할 시기입니다. 예전에야 일단 '술을 먹이고 보면' 친해지는 것이 소통의 방법이었다지만, 요즘같은 원자화된 시대에는 그게 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조금 더 고집이 세졌고, 스스로의 취향과 취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건강에는 더 신경을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저녁 술자리 회식은 이 모든 것에 역행합니다.
물론 요즘 점심 회식도 많고,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회식 빈도가 정말 많이 줄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의 변화를 무시한 채 '회식은 별로다' 라고 허공에 소리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글은 그러니 노파심에 슬쩍 차장님, 과장님들께 찔러보는 긴 포스트잇 정도로만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꼭 술을 먹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습니다. 멋지게 일하고 끈끈한 애정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술은 회사에서 주중에 마시기보다, 주말에 사랑하는 친구, 가족과 적당히 마시면서 즐겨봅시다. 우리 이제 그래도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