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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Aug 02. 2021

너도 페미 하니?

네 ㅎ 종종

다시 페미니즘이다."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즘"을 반대하기 위해 등장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건전한 이성교제를 막는 페미니즘을 반대하는" 윤석열 대선후보와, 페미니스트인지 아닌지가 논란이 되는 인터넷 세상이 다시 우리 앞에 등장했다. 우린 결국 자신이 속한 젠더를 벗어나 생각하기가 힘들다. 여성으로서 겪는 세상은 남성으로서 겪는 세상과 아주 많이 다르다. 그리고 이제 여성들은 특정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특정 손모양을 사용하였다는 이유로, 특정 머리스타일을 했다는 이유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는다. 


"너도.. 페미 하니?" (Do you Femi?) 


여기서의 페미는 옛날 여성 참정권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여성이나, He for She 운동을 위해 유엔 단상 앞에 선 엠마 왓슨이나, 호주제 폐지를 위해 법정에 섰던 90년대 인권운동가들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에서의 "페미 하니?"는 "일베 하니?"를 들었던 남성들의 카운터 펀치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타난 페미니즘은 남성을 향해 고추가 작다, 한국 남자스럽다, N번방 가입자이다, 라며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는 일련의 여성 군단을 뜻한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지금 페미니즘은 손가락 모양과 웅앵웅에 머물러 있다. 


사실 페미니즘에 손가락 모양과 웅앵웅이 다가 아님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외면하기엔 젠더와 관련 문제는 너무 도처에 있다. 3년 전 서지현 검사는 위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고발하며 미투 운동을 촉발시켰다. N번방이라는 텔레그램 속 공간은 미성년자 여성을 성적으로 학대하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남성들을 상대로 수익을 창출했다. 트렌스젠더라는 이유로 강제로 전역을 당했던 한 군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에도 군인임을 인정받지 못했다. 이 모든 사건을 조명하고, 해결하고, 그와 관련해 논의하고, 비극적인 일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예방하는 과정에 페미니즘이 있다.

사실 한국에서 페미니즘이란 단어가 등장한 지는 꽤 되었다. 2008년 폐지된 호주제는 남성이 곧 집안의 주인으로 기능했던 법을 없앴다. 2009년 법원은 최초로 부부 사이에도 강간이 성립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모두 여성이 사회적으로 받는 제약을 없애기 위한 일련의 운동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해방 후에도 여성운동은 항상 한국 사회에 굳건히 자리했다. 페미니즘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젠더 관련한 논의를 모두 포함하는, 굉장히 넓은 범위의 사상이다. 


이런 페미니즘이 어쩌다 한국 사회에서 금기시 되기 시작했을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는 유튜브와 트위터 등의 소셜 미디어 사이트 속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더욱 편향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어쩌면 페미니즘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현재의 1020 남성들이 이 편향된 알고리즘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여가부와 죠리퐁 사건을 다들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꽤 오래 전 인터넷에 나돌아다녔던 소문으로, 여성가족부가 죠리퐁이라는 과자의 모양이 여성의 성기와 닮았다 해서 판매를 금지하도록 요청했다는 내용이다. 이 외에도 여성가족부가 나라의 세금을 낭비하며 쓸데 없는 데에 태클을 걸고 다니고 있다를 증명하기 위한 각종 소문이 인터넷에 나돌아다녔다. 


여기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나 풀어보고 싶다. 필자가 해당 루머를 처음 들은 것은 중학교 시절 남성 학우들과 수다를 떨면서부터였다. 여성 학우들 중 대다수는 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반면 남성 학우들은 이미 죠리퐁과 관련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모종의 패턴에 따라 남성들은 여가부와 관련한 루머에 더 많이 노출되고,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된 후 만난 애인으로부터 죠리퐁과 관련한 루머를 들은 경험도 있는데, 중학교 졸업 후 시간이 꽤 지난 뒤였음에도 해당 뉴스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어 황당한 감정이 든 기억이 난다. 당시 내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이 페미니즘 관련 내용으로 꽉 채워져 있었던 것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지금도 젠더 문제와 관련한 정보는 여성과 남성에게 아주 다른 양상으로 전달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기성 언론은 과연 편향되지 않게 페미니즘을 대중에게 전달하고 있었을까? 사실 그렇지만은 않다. 지금 포털사이트에 '페미니즘'을 검색하면 대선 후보의 페미니즘 발언,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페미니즘 논란
이 15페이지를 넘는 기사를 차지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되고 있는 성범죄/유리천장/조직문화/저출산 등의 문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 모든 영역에 페미니즘이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저출산 문제에는 저성장 경제 기조와 더불어 낮은 가사 및 육아 분담률이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양성이 동등하게 교육받고 일하는 사회를 추구하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풀어내야만 할 문제다. 그러나 우리에게 여전히 페미니즘이란 오조오억, 허버허버, 웅앵웅, 그리고 짧은 머리일 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 사회는 페미니즘에 관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 몇몇 자극적인 단어들로만 이를 이해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접하는 각종 정보는 젠더 역할, 상대방 성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촉발시켰다. 기성 언론은 이를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해당 프레임으로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것이 옳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달한다. 여성문제에 무관심한 기성 세대는 페미니즘을 집 안 전등에 앉은 파리처럼 귀찮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공동체에 대한 무관심, 편향된 생각이 "페미니스트 논란"과 같은 단어를 만들어냈다. 페미니스트임이 논란이 되는 사회라니, 과연 한달 전 선진국 지위를 획득한 국가 다운 모습이다. 


그러니 누가 나에게 가끔 "너도 페미 하니?"(Do you femi?)라고 물어보면 "네 합니다."(Yes I do)라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 페미 할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여성의 재생산권을 인정한 낙태 합헌화를 마음속으로 응원할때와, N번방에서 활동하던 범죄자를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을 그 순간에. 마초남이 술자리에서 떠드는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지"라는 말에 괜시리 미간이 찌푸려지고,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강인함에 응원을 보내는 그 모든 순간에 말이다. 홍해처럼 갈라진 정보의 바다 속이지만 기억해야 마땅한 사실은 기억하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린 모두 젠더와 관계없이 자유롭고 고유한 한 인간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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