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고 다양한 대도시의 사랑법에 대하여
어느 휴가 날, 영화관에 너무 가고 싶었다. 어떤 영화를 보고 싶다기 보단, 깜깜해진 영화관 속에서 모르는 관객들과 함께 어떤 이야기에 푹 빠져 핸드폰도 한번 열어보지 않는 그 시간이 갖고 싶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중에 그나마 평점도 나쁘지 않고 내 취향에 가까울 것 같은 영화를 선택했고, 일부러 어떤 사전 정보도 없이 영화를 봤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나는 기립 박수를 치고 싶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이 영화가 끝나고 내가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던 이유, 그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생에 제대로 된 연애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는 지금까지 단 한번, 그런 내가 사랑에 대해 줄기차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연재의 시작은 이렇다. 많은 친구들과 사랑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하던 20대 초부터, 각자의 연애 연대기를 쌓고 개중에는 평생의 짝을 찾아 결혼까지 하는 30대까지 그 많은 친구들을 보며 내가 그들과 달리, 그들이 설레는 포인트를 내가 공감하지 못한다거나 그들이 꿈꾸는 삶을 내가 꿈꾸지 않는다는 간극에서 이 연재는 시작되었다. "언젠가 너도 한 번 누군가 좋아미치겠어 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라던가, "아직 정말 네 짝을 만나지 못해서 그래~"라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던 나는 그래도 20대에는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기대했다가 깨달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명명하는 '사랑'이란 보통 사람들의 그것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영화가 있다, 어쩌면 내가 명명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영화는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학과 내에서 미친년으로 통하는 재희와 게이인 흥수가 서로의 비밀과 일상을 나누게 되고, 어떤 계기로 동거까지 하게 되며, 두 사람이 동거를 하고 아이를 갖고, 낙태까지 했다는 무성한 소문을 뒤로 하고 나이를 먹어가는 그 과정의 이야기.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내가 보았던 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진정하게 사랑하게 되고 서로의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으레 떠들어대는 사랑 이야기가 싫었다. 그 이야기에는 언제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있었고, 남자 주인공은 어때야 하고, 여자 주인공은 어때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꽤 많은 순간 그 여자 주인공의 조건을 갖추기 싫었거니와 그 남자 주인공의 조건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다짐했던 것 같다. 내 인생에 이성애는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친구들이었다. 이성애적인 관계는 없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나의 바닥까지 깊게 공감해주는 것 같은 사람들, 혹은 나의 불행에 어깨만 두드리고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쿨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딱 그 정도까지의 인간관계가 편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성애적 관계를 갖지 않는다. 물론 그들 각자의 이성 관계는 갖고 있지만, 그건 영화 내 주인공 친구1, 친구2 수준의 곁다리로만 나타난다. 뻔한 불문율을 집어치운 전체적인 전개가 내게 와닿았고, 이성애적인 관계 없이도 누군가는 충분히 서로에게 가족같은 관계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줄 수 있는 면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들의 많은 역사가 모두 재밌고 와닿았지만 특히 와닿았던 장면이 있는데, 재희가 처음으로 마음을 주었던 남자친구가 사실을 자신을 세컨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양다리남이었던 것을 알게되고 흥수에게 위로를 기다렸던 밤, 흥수는 본인의 썸남이 그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축제 장에서 싸움이 나서 휘말리게 된다. 각자 길고 힘든 밤을 보내고 재희는 본인을 위로하러 오지 않은 흥수에게 화를 내고, 흥수는 그런 밤을 겪은 본인에게 아침부터 대거리를 해대는 재희에게 화를 낸다. 그렇게 싸움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소리친다. 흥수는 재희에게 "너 어제 무슨 일 있었어?!"라고, 재희는 흥수에게 "너 어떤 새끼한테 맞았어?!"라고. 그 순간, 어떤 안도감이 내게 밀려왔던 것 같다. '아, 저게 진짜 가족이구나. 쟤네는 이제 진짜 서로의 가족이 되어버렸구나.'하는 안도감.
안다. 흥수에게 재희는, 재희에게 흥수는 보통의 모든 사람들이 가질 수는 없는 특별한 인연일지도 모른다. 결국 사람은 모두 외롭기에 그게 이성이든 동성이든, 어떤 관계든 결국은 내가 힘든 순간 대거리를 해대다가도 그 사람의 고통이 보이면 바로 걱정하는 그런 관계가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겠지만 그게 누구에게나 저렇게 기다린 듯 쉽게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런 관계를 가장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라고 내게 조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연인이나, 결혼과 같은 관계를 말이다. 그들의 그런 걱정어린 마음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나도 젊을 땐 괜찮을지 모르지만 정말 나이가 들고 늙어가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이 진정 후회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되고 좋은 찬사를 받고 흥행하고 있는 이 모습이 내게는 어떤 위로와 안도가 된다. 친구들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그 많은 밤들동안, 인생 처음으로 연애를 하며 이렇게까지 행복하지 않은 게 연애인 것인가 고민하던 밤들동안, 결국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는 사랑을 하지는 못하겠구나 하고 깨달았던 어떤 밤의 나에게, 너 말고도 너가 꿈꾸는 방식의 사랑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이렇게 있다고. 그건 너만의 생각이 아니라고. 그러니 지금의 생각대로 너 답게 관계를 맺고 너의 방식으로 사랑을 하며 살아가도 된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아 정말 많이 위로가 되었고, 아마 그래서 나는 영화가 끝난 뒤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