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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Apr 24. 2020

초여름의 기운, 그리운 나의 이름

나의 새로운 시작을 인지하며

아이들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내려서 아파트 밖으로 나가는 순간 마치 초여름의 이른 저녁 같은 풍경이 나를 맞이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어린 시절의 나를 느꼈다.


나는 초여름 저녁을 참 좋아한다. 해가 아직 기울어지지 않아 푸른 기운이 가득한 하늘에 약간의 습기를 담은 공기 하지만 아직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이라 전혀 불쾌하진 않은 그 공기를 말이다. 아직 초여름이 되려면 한 두 달은 더 기다려야 했음도 불구하고. 물큰하게 코끝으로 전해지는 라일락의 향기에 아직 봄이구나 싶었지만 잠깐이나마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 시절의 나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동네를 뛰어다니기도 했고,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더 자라서는 소꿉친구와 동네 산책을 했고 그 뒤로 좀 더 나이가 들어서는 퇴근길을 종종 걸어가곤 했던, 초여름의 저녁. 그 기분 좋은 느낌을 실로 오랜만에 느끼는 것이 낯설었다. 아마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존재가 돼버렸기에, 오롯이 나라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 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엄마라는 말이 너무 익숙해지고 아줌마라는 호칭은 낯설면서도 익숙해지고 있는 내게 그 잠깐의 환기는 타임머신이 이런 것인가 싶은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새삼 ''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이유진'이라는 이름으로만 살아온 것이 32년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나를 마누라라 부르고 엄마라 부르며, 누군가는 시완이 엄마 혹은 지완이 어머니라고 부르고, 누군가는 며느리, 누군가는 달빛따라님, 누군가는 아줌마, 이모, 사모님 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이 많은 호칭 중에서 진짜 나는 무엇일까를 묻는다면 글쎄 잘 모르겠다. 그 많은 호칭들이 결국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또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의구심을 일게 한다. 초여름밤의 타임머신이 가져다준 어린 시절의 나는, 혹은 결혼하기 전의 나는 그냥 나였는데, 그런데 결혼이라는 것을 하면서 아이를 낳으면서 더 이상 '이유진'은 그 홀로의 존재로만 남겨지지 않게 되었다. 많은 역할이 필요해진 것이다.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냥 척척해냈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그냥 주어진 것처럼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주위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나에게 부가되는 호칭이 늘어날 수록 해야 할 일들 역시 따라서 많아졌고, 그런 일들을 수행하는 동안 나는 오롯이 '나'로서 존재하기보다는 그저 많은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여러 가지 역할들을 수행하는 것 또한 내가 맞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그 역할들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롯이 '유진'으로만 존재했던 그때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라는 사람이 그 수많은 역할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싶은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여전히 나를 '유진'이라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친구들. 친해진 동료들, 가끔은 나의 남편, 그리고 아이 어린이집을 통해 알게 된 동네 언니. 특히 그 언니가 나를 이름으로 불러줄 때, 왠지 기분이 새롭다. 내가 원래부터 알아온 사람들이 아닌,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서 알게 된 사람으로부터 내 이름을 듣는 것이 참 새로웠다. 그녀 역시 본인도 누군가에게 'OO엄마'가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아닐까 싶어 진다. 그렇기에 나도 그 언니를 부를 때면 언니의 이름을 넣어서 부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녀처럼 나도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엄마들의 이름을 부르고 싶지만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겪으면서, 아이들에게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떠넘기기 인가를 자연스레 깨닫는다.




역할이 늘어나는 만큼 나를 부르는 호칭에 변화가 생겨났다는 것을 인지할 무렵 나는 왜인지 조금은 쓸쓸해졌던 것도 같다. 새롭게 부여된 역할이 맘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물큰한 초여름의 바람을 맞는 순간 오롯이 '유진'으로만 불리던 그 시절이 그리워졌던 것은 아마 내가 그때를 까맣게 지운채로 몇 년을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이 좋지만 왠지 모를 씁쓸한, 든든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드는 것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뭐가 됐든 이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단지 '그립다'라는 감정에 후회를 머금고 있지 않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이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지금의 현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더라면 나는 아마 그 시절의 내가 너무 그리워서 우울해졌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그런 시간들은 알듯 모를 듯 찾아왔다가 사라져 주었음에 새삼 감사하다고 느낄 뿐이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았던 호칭들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이제는 그것이 나의 삶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된 지금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푸르렀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그 시절, 오롯이 '나'만 생각하면 되었던 시간들.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는 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을 가능하게 해 준 나의 가족과 친구들, 그들에게 새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물론 그 가운데, 새로운 나를 있게 해 준 나의 남편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이 있기에 앞으로도 힘든 일들이 있겠지만 버틸 수 있는 힘을 얻겠다 싶어 진다. 많은 역할이 주어졌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이유진'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일 테니 말이다. 나의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응원해본다.





옛 샘


아 기뻐하여라 그대는 그 밤에 혼자 있는 게 아니고

별빛 속에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그대에게로 오고 있는 것이다.


한스 카롯사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시집 中




*표지 사진 : Photo by Bryan Garce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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