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진 Nov 19. 2020

열매의 달콤함을 맛볼 그날을 기다리며

견디고 있는 사람들에게

새벽에 깨서 뭘 좀 하려고 치면 아이들이 울면서 나를 찾아댄다. 오늘 새벽은 브런치북 응모 마감일인 데다 친구와 새벽 산행을 약속했기에 나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게다가 다음 주에 어머니 생신이 있어 오늘 점심은 함께 밥을 먹기로 되어있었기에 왠지 새벽에 마무리 짓지 않으면 제대로 할 시간을 못 낼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이가 잠든 것 같아서 조심조심 나왔는데 다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체념하고 아이 옆에 누웠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깐 깬 남편은 몇 시인가 싶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밝은 불빛 속 4:20분 숫자를 보았다. 아이는 이내 잠든 것 같았지만 일단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시간이 아까웠지만 괜히 조급한 마음에 일어났다가 다시 아이가 깨버리면 말짱 도루묵이기에 누워서 생각을 좀 해보기로 했다. 브런치북 제목을 뭘로 할까 고민했다.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제목이 뭐가 중요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작년의 탈락을 생각하면 그대로 발간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 진즉에 좀 해놓을 걸 하는 후회들. 아까 일어나야 할 때는 그렇게 일어나기 싫더니 체념하여 다시 누우니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브런치북 응모를 하지 마라는 계시인가. 어차피 떨어질 거라는 계시인가. 나는 언제쯤 출간이라는 걸 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즐겨 읽는 웹툰 <유미의 세포들>의 주인공 유미는 500여 편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본인의 꿈인 작가가 되었다. 게다가 인기 작가! 유미는 작가가 되면서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내게 있어 가장 인상적이 었던 부분은 바로 그 장면들이었다. 갑자기 유미가 이룬 것들이 부러웠고, 내게도 유미와 같은 타이틀이 주어지는 날이 올까 싶어 졌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상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상상 속에서 나는 아주 유명 작가가 되었다. 입장이 바뀐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 내 글을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일희일비하는 무명작가가 아니었다. 내 책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출판사들과 독자들! 출연이 문제가 아니라 다음 작품을 뭘로 할지 고민하는 인기 배우들처럼 아주 갑 오브 갑 작가가 되는 그런 상상을 했다. 웃겼다.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다시 현실로 돌아오자 나는 온갖 오디션을 준비하는 무명배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열심히 하다 결국 빛을 보는 배우들처럼 내가 지금 그런 상태인 걸까?


새삼 자기 일을오랜 기간 동안 하다가 빛을 본 사람들이 대단하다 싶어 졌다. 그들의 인내는 어떻게 유지되어 온 걸까 싶기도 했다. 왜냐하면 포기할 이유는 사실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근과 채찍이 적당한 간격으로 들어와야 하지만 당근이 들어오는 시간은 결코 일정하지 않고, 그렇기에 예상할 수 없다. 임계점을 돌파하라고 하지만 그 임계점이 어디인지 그 누구도 정확한 수치를 제공해 주지도 않고, 개인에 따른 차이가 천차만별이기에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답답하다는 생각이 천 번 만 번도 더 드는 상황에서 무명의 예술가들은 다들 어찌 그 인고의 시간을 버티는 것일까. 고흐는 얼마나 불행했을까.


다행히 나의 슬럼프(?)는 길지 않아 졌다. 한 번씩 혼자서 허튼짓 하나 싶다가도 이내 추스르게 된다.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삶을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내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이 용기를 주는 말들을 접하게 되고 위로를 받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생각지 못했던 부분에서 위로를 받기도 하는데 어제 아이와 상담을 하면서 받은 위로가 그것이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상담할 때 버츄카드를 사용한다. 본인들이 가진 미덕, 자기에게 부족한 미덕을 하나씩 찾으라고 하는데 아이가 자기에게 부족한 것으로 인내를 꼽았다. 인내를 읽어보면 이렇게 나온다.


인내는 일이 제대로 잘 풀릴 것이라는 차분한 믿음이며 희망입니다. 당신은 불평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을 시작할 때 당신은 머릿속에서 그 끝을 그립니다. 당신은 자신이 정한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미래에 대한 헌신입니다. <버츄카드>


나는 그 글귀를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그건 아이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나에게도 하는 말이 되었다. 인내는 무작정 참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한 목표가 있고 그것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되면 계속해서 전진하는 것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말처럼 간간히 인고의 시간이 쓰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찾아올 때가 그렇다. 그때는 참으로 쓴 시간들이다. 열매가 얼마나 달콤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엄청 달콤할 것이라는 기대는 갖지 않기로 한다. 대신 달콤한 열매를 그저 맛보고 싶을 뿐이다. 아.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그 기분. 그것을 느끼고자 그저 견디어 내야 할 뿐이다. 얼마 전에 서평을 쓰기 위해 읽은 <치유의 말들>에서도 그런 말이 나왔다. 살아남는 자는 끝내 버티는 자다. 그러니 견디고 올라오라고. 나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의 말이라 더욱 힘이 되었다. 잘하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버티고 견디라고 하는 말이 왠지 위로가 되었다. 그저 이 상태를 잘 유지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을 손 놓지만 말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렇다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습관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제는 유튜브에 “선생님의 생각과 비교를 하면서 책 리뷰를 들으니까 더욱 이해가 잘돼요!”라는 댓글이 달렸다. 내가 촬영하는 목적과 일치하는 대답이었다. 당근이 주어진 것이다. 열매의 달콤함은 아직 아니지만 내가 계속하게 하는 영양분이 되어준다. 구독자 수를 볼 때마다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 싶은 생각이 들지만 또 이러한 댓글에 ‘그래, 열심히 해야지!’ 하는 팔랑귀가 되어버린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을 잊지 말자. 게다가 그 누구보다도 나 스스로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도중에 포기하지 않기를. 꾸역꾸역 버티어 나가기를 나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이전 04화 어머니라는 호칭이 어색하지 않게 된 나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