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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Nov 24. 2020

택시 모범운전기사 아저씨들과 교통 정체와의 관계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는 것

몇 주 전 월요일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를 데려다주고 정신없이 뛰어 정류소에 도착을 했는데 웬걸 평소 월요일보다 정체가 심했다. 내가 버스를 타는 곳은 정체구간 바로 전이라 그래도 차가 움직인다. 하지만 그날은 어째서인지 도로가 전부 자동차로 빽빽하게 채워져 차들이 도통 움직이지를 않았다. 버스 표지판에 버스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는 떴지만 움직이지 않는 차들 속에서 버스가 제시간에 오기는 무리였다.  


그렇게 하염없이 10분 정도를 아무것도 못한 채 기다렸다. 보통 같으면 수분 내에 환승을 하면 되기 때문에 어떤 버스라도 탈 수 있는 상황인데,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고라도 났나? 아이들에게 부랴부랴 연락을 했다. 선생님이 오늘 5-10분 정도 늦을 것 같다고 일러두었다. 그렇게 한 참을 기다리다 겨우 버스에 올라탔고, 느릿느릿 가는 버스에서 애만 태울 수는 없어 그냥 체념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사고의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신호등이 고장 난 것도 아니었다. 딱 한 가지 다른 점은 사거리에서 차들을 진두지휘하는 택시 모범기사 아저씨들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인데, 설마라는 생각으로 이내 접어버렸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평소처럼 정체구간이 지나자 조금 나아진 도로 상황 덕에 가까스로 도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이었을까? 학교에 도착해서도 한동안은 궁금증이 그치질 않았다. 혹시 다음 날도 그러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다음 날은 예전과 다름없는 날이었다. 다행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도대체 어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어제와 달리 열심히 일하시는 모범 운전기사 아저씨들을 보자 내 예감이 맞았구나를 직감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경찰처럼 제복을 갖춰 입고 형광 노란 조끼에 빨간색 지휘봉을 들고 차들을 진두 지휘하는 아저씨들이 있다. 맨 처음 그분들을 봤을 때 나는 경찰인 줄 알았다. 이른 아침부터 고생 많으시다 했는데, 남편 말로는 경찰이 아니라 모범 운전기사라 했다. 택시 기사들 중에서 모범운전기사가 있단다. 그분들이 교통정리를 담당하시는 것이라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중에 다시 보니 아저씨들의 제복에는 ‘경찰대신 ‘교통이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대부분 연세가 지극하신 분들로 복장 상태나 진두 지휘하는 거침없는 손동작과 목소리로 미루어 짐작해본데, 본인이 하시는 일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계시는구나가 느껴진다.  


대로이긴 하지만 직진 차량부터 해서 양방향에서 유입되는 차들이 워낙 많다 보니 출근시간대에 도로에 진입하는 차량이 엄청 많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신호를 물고 이동하는 차량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차들 때문에 정체가 더욱 심해진다. 아저씨들의 역할은 그런 차들이 생기지 않도록 적절히 통제하는 것이다. 아직 파란불이지만 신호를 건넌 차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판단되면 더 이상 차들이 넘어갈 수 없게 빨간 지휘봉을 들고 통제를 한다. 그들의 역할은 실로 중요했다. 신호등이 있지만 신호가 정확하다고 해서 물밀듯이 몰려드는 자동차의 흐름을 제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역할을 아저씨들이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은 날이 추워져 모두 창문을 닫고 있지만, 더운 여름이나 제법 날씨가 좋았던 가을에는 문 열린 창밖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아저씨들의 육성과 ‘삑, 삑’ 울려대는 호루라기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는데, 목소리만 들어도 보통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차가 너무 많아서 맨몸으로 그렇게 서 있는 게 좀 무섭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이쯤이면 기사 아저씨들이 어떤 대가를 받고 그 일을 하시는지가 궁금해진다.




사람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한 번씩 생각한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목표하는 것, 학교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기대하는 것은 비슷하다. 바로 자기 역할, 제 몫을 해 내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자기의 몫을 다하면서 그 가운데 자기만의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몫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 생각보다 주변에 많은 피해를 준다. 우리는 스스로가 하는 것, 자기가 회사든 가정이든 어디서든 자기가 하는 일을 하찮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각 반마다 있는 1인 1역이 그렇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그 역할을 누군가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대체해야 하고, 혹은 그로 인해 전체가 피해를 보게 된다.


근데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들 자기가 맡은 일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 맡은 바를 성실하게 하는 것은 매우 하찮게 여기고 그 보다 더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맡은 일은 대충 해놓고 게임, 유튜브, 티브이, 친구 만나기 등에 중요성을 더 크게 두는 것이다. 김영민 교수는 열심히 달려야 또 진정한 쉼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매우 동의했다. 모든 일을 대충 하고 평소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쉼이란 큰 의미가 없다. 제대로 일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제대로 놀 줄도 없다. 놀면서도 마음이 불안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역할을 다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가 보든지 안 보든지 일이 끝난 내 책상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것. 자기가 앉은자리에 의자를 책상에 잘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 내가 흘린 음식물, 내가 흘린 쓰레기를 내가 집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 내가 사용한 물품을 원래 상태로 두는 것. 이런 작은 몫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우리는 너무 큰 역할에 힘겨워하고 있다. 내가 과연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내가 엄청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거 말이다.


내가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면 아마 사회는 법이 없어도 잘 돌아갈 것이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자기가 맡은 일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다음으로 내가 맡은 바 역할을 일단 해내는 것, 거기에 나아가 내 맡은 바 역할을 좀 더 잘하는 것, 그러다 보면 내가 이 세상의 한 구성원으로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의 중요성까지 말이다.


내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면 우리 아이들은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게 될 것이고, 그것은 부모에게도 좋은 일이겠지만 사회 전체로 볼 때에도 엄청나게 큰 이익이다. 내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하고, 잘 가르쳐 아이들이 앞으로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혹은 작가로서 재미있는 이야기, 좋은 이야기를 써서 단 한 명이라도 그 이야기에 감동을 받고 희망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역시 제 몫을 해낸 것이 아닐까.


물론 내가 하는 역할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더욱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거기에 더 나아가 작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엔 별거 아닌데, 아주 쉬운데 하는 사소한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쓸모 있는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식이며 학생으로, 직업인으로 혹은 자기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각자의 몫을 감당하고 살고 있다. 때로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너무 하찮게 느껴지기도 반대로 너무 무겁다 느껴질 때가 있다. 나 역시도 그렇다. 몸과 마음이 지친 날이 있나 하면, 어떤 날은 의욕이 불타올라 이것저것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또 어떤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쳇바퀴 같은 하루를 반복할 때도 있다. 매번 그런 것이 반복된다. 그런 가운데 한 번씩 나는 내 역할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하찮다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사람이 제 역할을 해 낸다는 것, 그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역할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Photo by RayBay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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