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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un 13. 2021

마음이 죽지 않기 위해서...

라디오에서 조식 선생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평생을 초야에 묻혀 지내며 제자 양성에 힘썼던 그가 제자들에게 남긴 말에 대한 코멘트였다.


마음이 죽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조식선생의 마음을 죽지 않게 만들었던 것은 친구가 보내준 책 때문이었다고 했다. 라디오 진행자는 '여러분의 마음을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말로 멘트를 마무리했다. 마음이 죽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짐작이 가면서 동시에 나의 마음을 죽지 않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됐다.  


오늘은 유난히도 피곤한 날이다. 새벽기상도 미룬채로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기상을 했다. 달리기도 건너뛰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했다. 날씨도 흐리고 온 몸은 두들겨 맞은 듯이 여기저기 쑤셔왔다. 이것 저것 다 제쳐두고 사우나에 가서 몸을 뜨끈하게 녹이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하지만 나의 현실은 딱딱한 교실 의자다. 이 교실 바닥에 누울 수는 없으니 간단히 스트레칭을 했다. 수업이 진행되고 하루는 또 흘러가고 있다.


운동장 수업이 끝나고 5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왜 운동의 효과가 이럴 때 나타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운동을 해서 지금 이상태로나마 버틸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날씨도 흐리멍텅하고 약간 쌀쌀하기도 한 것이 뭔가 자꾸 쳐지는 기분이었다. 몸도 안좋고 기분도 안좋은 날, 오늘이 금요일이 아니었다면 그만 뒷목잡고 쓰러졌을지도 모르는 날. 다운된 기분을 업 시키고 싶었는데 쉬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죽는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냥 딱 드러눕고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그러다가 결국 다음날 사단이 났다. 일정이 있어서 남편과 꽤 먼거리를 이동했는데 슬슬 두통이 찾아왔다. 체한것이다. 나는 어릴 때 부터 곧잘 체했는데 가장 불편한 것은 두통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임신을 하면서 사라졌던 이 병이 어느 순간 부터는 연례행사처럼 2-3달에 한 번씩은 나를 찾아와 괴롭히고 있다. 두통이 시작되면 일단 괴롭다. 속도 미식거리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진다. 소화제 같은 것도 잘 듣지 않는다. 한 번은 그걸로 병원에를 갔더니 의사선생님께서는 근육이완제를 처방해주셨다.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곤과 스트레스가 누적되면서 소화 불량이 찾아오고 위가 멈추게 되면 혈액순환이 안돼 두통으로 연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하셨다. 그저 잘 체하는 것이 고질병이라고만 생각했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약을 먹고 나니 거짓말처럼 두통이 사라짐을 경험하면서 몸과 마음의 이완된 상태를 잘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하지만 삶이란 언제나 그렇듯 내가 받고자 해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며,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출구를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브로 쌓이는 것은 어쩔 수 없구나 싶다. 이미 토요일 오후라 병원은 문을 닫았고, 스트레스 성이라는 걸 안 다음부터는 예전처럼 손을 따거나 억지로 구토를 하는 것은 왠지 꺼려졌기에 빨리 잠자리에 들어서 한숨 자고나 괜찮아지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보니 잠자고 나서 괜찮아졌던 것은 자면서 몸의 근육이나 신경들이 이완되는 효과 때문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자연스레 최근에 내가 무엇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나를 돌이켜 보게 됐다.


‘나 너무 할 일이 많아’ ‘너무 바빠’ 라고 남편에게 늘어놓는 푸념들이 머릿속에서 멤돌기 시작했다. 직업인으로서 엄마로서 또 나 자신을 찾아가려는 한 인간으로서 내가 가진 것들을 모두 움켜잡으려고 애쓰고 있는 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즐거움도 있지만 힘듦도 있다. 보람도 있지만 허무함도 있다. 특히나 ‘멀티테스킹은 불가능한 것이다’ (원씽) 와 같은 문구를 접하면 다시 회의감도 몰아친다. 그럼 내가 틀린 것일까?  



 번에  가지의 일을 정하고,  일을  때에는  일만 하자.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 가지에만 몰두하려면 선택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이자 내 일을 갖고 있는 직업인이고, ‘나’로서 살아가고 싶은 한 인간이다. 그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나는 과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일까?


독서모임에서 내가 이런 저런 불만을 털어놓자 지금 6개월 아기를 키운다는 분이 그러셨다.


저는 원래 멀티테스킹이 안되는 사람이었어요. 걸으면서 전화를 하거나 그런거요. 그래서 저는 육아를 할 때는 육아만 해요. 그리고 남편이 와서 아이를 맡아주면 그때부터는 제 미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그게 원씽인 것 같아요.


그분의 말씀이 맞았다. 내가 감당해야할 역할이라는 것이 정해져있고, 그것을 다 해내고 싶다면  번에  가지의 역할에만 나의  마음을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동시에 이것저것 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한가지에 집중은 하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이걸 마치고 해야할 다른 일들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일은 아닌데, 어찌하다보니 하루 하루  체크해야할 일들이 늘어나면서 일일퀘스트를 달성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저 할 일에 밑줄을 긋는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


윤여정 배우는 이번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에서 두 아들에게 영광을 돌린다. 엄마를 일하러 나가게 종용한 두 아이들 잔소리 덕분에 지금껏 열심히 일해서 지금 이 상을 받게 됐다고 말이다. Be loved sons… This is the result. Because mommy worked so hard.


그런 그녀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우리 아이들이 좋은 엄마, 자랑스러운 엄마 중에서 고르는 것이 아닌 그저 ‘나’ 자신의 모습으로 살기 위해서 고군분투했던 엄마의 모습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내가 있다.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틀린게 아니었다. 근근히, 꾸역꾸역 만들어 둔 내가 남긴 기록물들이 나의 마음을 죽지 않게 만들어준다. 스스로의 인정과 가끔 들려오는 칭찬에 나의 마음은 다시 살아난다. 글에서 항상 다짐하는 것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쓴 글처럼 되기 위해서 노력은 하게 된다. 그것이 내 마음이 죽지 않는 비결이다.


그나저나 74세에 저런 무대에서 저정도로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도 욕심일까?  아직 70이 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남았으니 그건 일단 제쳐두자.


표지사진 출처 : https://m.blog.naver.com/bluevie/22232710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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